|
▲ 백혈병을 진단받은 김성태씨가 병실에 홀로 누워있다. |
평생 독신으로 퇴비 운반 일하다 병 걸려
빚만 2000만 원 넘고 형제들도 힘든 처지
"내가 이 세상을 떠나도 슬퍼할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을 진단받은 김성태(59)씨가 길가에서 힘없이 손을 휘저어 택시를 잡는다.
"아저씨, 이러시면 안돼요. 지금까지 받은 치료가 다 물거품이 되잖아요. 이럴수록 힘을 내세요."
김씨를 아버지처럼 돌보는 신정훈(33)씨가 뛰어 왔다. 이 날은 김씨가 한 달간 집에서 요양을 하고 다시 검사를 받으러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올라가는 날이었다. 신씨는 김씨가 전화를 받지 않아 집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병원에선 감기라도 걸리면 바로 목숨이 위험해진다고 했는데, 다시는 이러지 마세요."
퇴비를 운반하는 화물차 운전기사였던 김씨는 지난해 9월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숨이 자꾸 차오르고 폐에 통증이 느껴져 병원에 찾아갔다. 그런데 검사 결과,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이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그에게 백혈병은 사망선고처럼 느껴졌다. 건설직 일용 노동자와 운전일을 하며 착실히 살아왔지만 모든 게 물거품이 돼버렸다. 병도 병이지만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서글펐다.
그의 상황을 잘 아는 막역한 친구는 아들(신정훈)에게 친구를 돌봐줄 것을 부탁했고, 그때부터 신씨가 아들노릇을 하고 있다. 전주에서 서울까지 꼬박 3시간 걸려 병원엘 오간다. 김씨가 입원 중일 때는 1주일에 한번 병원에 들러 빨랫거리를 챙겨 온다. 김씨의 휴대전화는 늘 꺼져 있지만 신씨는 조용히 들어가 정리를 하고, 속옷을 갈아입혀 주고 나온다. 대소변도 간다.
김씨는 6남매 중 다섯 째로 태어났지만, 형제들과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다. 일찍 부모를 잃고 너무 가난해 형제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신씨는 형제간 골수 이식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김씨의 형과 누나들에게도 연락을 취했지만 선뜻 나서주는 이는 없었다.
형과 누나들은 신씨 연락을 받고 병원에 얼굴을 내비쳤다. 그리고 위로금 10만 원을 건네고 떠났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든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김씨 카드 값은 1000만 원이 넘게 쌓여있다. 최근 제대혈 이식 수술을 받았고 수술비가 1400만 원이 나와 치료비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대출을 받아 급한 불은 껐지만 막막한 상황이다.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40만 원의 정부 보조를 받고 있다. 그러나 30만 원은 임대아파트 임대료로 고스란히 빠져나가 남는 돈은 10만 원도 채 되지 않는다.
전주교구 상관본당 범선배 주임신부는 "이식 수술이 잘 됐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닥칠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금전적 여유나 마음의 여유가 바닥"이라며 독자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이지혜 기자
성금계좌 (예금주:평화방송)
국민은행 004-25-0021-108
우리은행 454-000383-13-102
농협은행 001-01-306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