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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前 오늘의 월남 패망

namsarang 2011. 4. 30. 20:34

[시론/김상겸]

36년前 오늘의 월남 패망

 

 

지금부터 36년 전인 1975년 4월 30일 월맹군이 월남의 수도 사이공에 진입했다. 월남의 대통령궁에 있던 월남기가 내려지고 월맹기가 올라가면서 월남이란 국가는 지구상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이 피 흘리며 생명을 희생했지만 부패와 무능, 분열과 불신의 늪은 너무나 깊고 넓어 허황된 슬로건 앞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월남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가 망하는 것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우리 역시 과거에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20세기 초 대한제국은 오랜 기간 부패와 무능 속에서 국제정세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음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외세에 의존하려다가 무참하게 무너졌다. 월남의 경우도 위정자의 부패와 무능, 사회 혼란과 국민의 분열로 막강한 공군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이렇게 국가의 붕괴에는 사회 지도층의 부패와 무능, 갈등과 분열로 초래된 사회 혼란이 자리 잡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에 터 잡은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이념 아래 옛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국가로 나뉘었다. 동서의 이념분쟁은 상당수 신생국가를 괴롭혔다. 한반도의 분단과 베트남의 분단 등이 그 대표적 예다. 1960년대 우리는 자유 월남을 지키기 위하여 미국의 요청에 따라 파병하였다. 물론 당시 우리나라 역시 허울만 좋은 민주국가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적어도 자유와 평등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은 존재하였다.

월남과 월맹은 분단된 이후 소위 통일이란 기치 아래 오랫동안 싸웠다. 베트남에서의 전쟁은 이념 전쟁을 벌이던 동서진영 서로 간에 세력을 내세우기 위한 좋은 기회였다. 월남과 월맹은 각기 군사지원국을 통하여 피를 흘렸다. 이도 모자라 미국은 지상군을 파견하면서 본격적으로 개입하였고, 사회주의 국가들도 월맹을 지원하면서 전쟁이 지속되었다. 그렇지만 많은 인명이 전쟁을 통해 희생되자 국제여론은 평화적 해결로 모아졌고, 1973년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월남에서 미군과 한국군은 철수하였다.

그러나 휴전협정이 맺어졌던 1973년은 평화의 시작이 아니라 공산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휴전협정 이후 월남에는 수많은 단체와 언론사가 양산되어 사회 혼란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종교인과 학생, 반전운동가와 인도주의운동가들이 정권 타도와 미군의 완전한 철수 등 외세의 배격을 외쳤다. 이들 중 상당수는 월맹이 월남을 붕괴시킨 후 베트남 공산당과 인민혁명당에서 침투시킨 조직원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월남의 패망은 국가가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에 의해서도 붕괴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월남의 패망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내부의 적은 드러난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섭다는 것, 통일은 이상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것,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이를 쟁취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헌법국가이다. 우리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사회적 정의를 추구한다. 국민은 헌법이 요구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

 

민주주의의 적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은 이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인류사의 경험이다. 우리는 전무후무한 3대 세습국가인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겉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외치는 북한은 지난해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를 포격하는 등 침략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정신과 의지만이 한반도에 평화를 유지하고 대한민국의 존립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길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