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식 신부(원주교구 횡성본당 주임)
사람은 누구나 더 나아지기를 바라고 더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더 나은 것을 얻으려고, 더 큰 행복을 얻으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물질에서 행복을 얻으려던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지식이나 힘, 명예나 쾌락 등에서 행복을 찾던 사람들도 행복하지 못했고 건강에서 행복을 얻으려던 사람들도 건강만으로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더 나아지고 싶고 더 행복해지고 싶은 데 잘 안 됩니다. 우리네 인생에는 나약한 인간의 힘만으로 안 되는 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힘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특히 기적 같은 독특한 신앙체험이 있으면 신앙심이 더 깊어질 수 있고 행복도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학교 어린이 한 명이 꿈에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됐답니다. 갓 영세한 신자 한 명은 꿈에 성모님을 보고는 확고한 신앙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을 딱 한 번만 보았으면, 꿈속에서라도 좋으니 예수님 목소리를 딱 한마디라도 들어본다면, 예수님을 단 한 번만이라도 만져볼 수 있다면, 먼 발치에서 예수님 옷자락이라도 한 번 만져보았으면 신앙심이 더 깊어질 수 있고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손으로 만져보고 예수님 얼굴을 두 눈으로 보고 예수님 목소리를 귀로 들었다고 해서 예수님을 더 잘 믿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자그마치 삼 년 동안이나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수없이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무수히 만져보고, 수 천 번도 넘게 예수님 말씀을 똑똑히 들었지만 신앙심이 깊어졌던 것도 아니고 삶이 바뀌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교리지식이 풍부하고 신앙체험이 많으면 더 깊은 신앙심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제자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제자들만큼 많이 알고 많은 체험을 한 사람들도 없지만 그들처럼 형편없던 신앙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나서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놀랍게 변했습니다. 그 많은 가르침을 예수님한테 직접 듣고도, 그 놀라운 기적을 생생하게 체험하고도,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변치 않던 완고한 마음이 성령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의심 없는 믿음과 평화로운 마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많이 알고, 많이 체험한다고 해서 신앙심이 깊어지고 행복이 커지는 것이 아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사업을 하고 돈을 벌고 출세를 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신앙심을 깊게 하거나 행복을 더 크게 만들어 가는데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적 지식과 체험, 노력이기에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데는 별 힘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태산같이 믿었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시자 제자들은 더 이상 의지할 데가 없어서 다락방에 모여 문을 닫아걸고 무서워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성령이 그들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불혀 모양의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마치 전기충격을 받은 것처럼 뜨거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180도 변했습니다. 겁쟁이에서 용감한 자로, 불안에 떨던 마음에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미지근한 믿음에서 확실한 믿음으로, 고통에 짓눌린 찌든 삶에서 기쁨에 넘치는 은총의 삶으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도 더 나아지려하고 더 행복해지려 하지만 인간의 힘만으로는 잘 안 됩니다. 기도를 많이 해도,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보고 예수님 옷자락을 만진다고 해도 그 자체로 신앙심이 더 깊어지거나 행복이 더 커지지는 않습니다.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지려면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000년 전 사도들에게 내리셨던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오신다면 틀림없이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오소서, 성령님.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저희 생기 돋우소서. 주님 도움 없으시면, 저희 삶의 그 모든 것, 해로운 것뿐이리라."(성령송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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