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식 신부(원주교구 횡성본당 주임)
우리가 살아가는데 의ㆍ식ㆍ주(衣ㆍ食ㆍ住) 세 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다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먹는 것(食)이 더 중요합니다. 옷(衣)이 없어도, 집(住)이 없어도 그럭저럭 살 수 있지만 음식 없이는 삶을 유지할 수 없는 만큼 꼭 있어야 합니다.
음식을 먹어야 갖가지 영양분을 섭취해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음식이 몸을 건강하게 할 수는 있으나 마음을 건강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음식을 잘 먹는다고 지식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교양이나 덕이 쌓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음식은 어디까지나 몸을 튼튼하게 해줄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 마음을 살찌우는 음식이 있습니다. 아니 영혼과 영적 세계까지 살찌우고 풍요롭게 하는 양식이 있습니다. 육신만 살찌우는 보통 음식과 달리 영혼을 살찌우고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산삼ㆍ녹용도 아니고 보신탕도 아닙니다. 물고기도 아니고 소고기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고기'입니다. 예수님의 살로 만든 '예수고기', 즉 예수님 몸인 성체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에 우리는 육체만을 살리는 물질적 양식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양식인 성체의 소중함을 더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소중한 성체를 아주 가까이에서 너무 쉽게 만날 수 있어서인지 성체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가까이에 있고 자주 보면 소중함을 모르는 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살아계셔서 자주 볼 수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까 어머니의 소중함이 뼛속까지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매순간 호흡하는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듯이 어떤 신자들은 성체성사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성당 안에 계신 예수님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몇 시간 동안, 아니 하루 종일 걸어가서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모셨습니다. 일 년에 단 두 번 판공 때만 성체를 모실 수 있던 신자들은 성체를 모시는 기쁨에 며칠 전부터 설레어 밤잠을 설치고 성체를 모시는 당일에는 아침부터 밥도 안 먹고 영성체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신자가 줄어 본당에서 공소로 격하된 옛 성당 옆에 사는 안드레아씨는 너무 속상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이제는 본당신부가 한 달에 한 번만 공소에 와서 미사를 드리니 영성체도 한 달에 한번 밖에 모시지 못하게 돼 너무 슬프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걸어서 5분만 가면 매일 미사를 참례하고 성체를 모실 수 있었는데 이제는 성체를 모시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니 한탄합니다. 성체가 가까이 계실 때 자주 모시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스럽기만 합니다. 성체는 우리 영혼의 양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빵 즉, 예수님 몸인 성체를 먹으면 영혼에 영양을 공급해 영원히 살게 된다고 오늘 복음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 56).
맞습니다. 예수님 살을 먹는 사람은 예수님의 힘으로 삽니다.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으면 강한 힘이 생기듯이, 영화 취권의 주인공이 술을 먹으면 탁월한 무술 실력이 나오듯이 실제로 성체를 모심으로써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이들이 꽤 있습니다.
원수에게 앙갚음하는 대신 사랑으로 갚는 사람, 자신도 아프면서 더 아픈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 찢어지게 가난하면서도 행복한 사람, 그 밖에도 성체의 힘으로 기적 같은 은총의 삶을 살아가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영혼에 좋은 음식인 성체를 매일, 자주 모시는 신자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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