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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만난 ‘코리안 파워’

namsarang 2011. 6. 20. 23:29

[특파원 칼럼/신치영]

뉴욕에서 만난 ‘코리안 파워’

 

 

2008년 7월 뉴욕 특파원으로 부임해 3년여 머물면서 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한국인들을 만난 것은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뒤섞여 세계의 중심 도시를 만들어가며 ‘멜팅 폿(melting pot)’이라는 별칭을 얻은 뉴욕에서 한국인들은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를 향해 뛰고 있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다. 192개 회원국이 모여 국제 문제를 논의하며 때로는 특정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유엔 수장 자리에 한국인이 앉아 있다는 사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한국 유엔대표부에 따르면 반 총장 덕분에 한국이 유엔에서 누리는 지위도 한 계단 격상됐다. 21일이면 반 총장은 유엔 총회에서 192개 회원국 대표들의 박수를 받으며 연임을 확정하게 된다. 아시아인으로는 우 탄트 이후 45년 만에 첫 재선 사무총장이 되는 것이다.

전 세계 기업들의 각축장인 미국 시장에서 삼성 LG 현대차 등 한국 기업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미국 언론이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의 분야에서 애플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으로 삼성전자를 꼽을 때, 도요타나 혼다보다 품질이 좋다며 현대차를 타고 다니는 미국인들이 늘어나는 것을 볼 때, 기자 어깨에도 힘이 들어갔다.

최근에는 문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 예술가들도 적지 않다. 세계 5대 발레단의 하나인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지젤’에서 여주인공으로 춤을 춘 발레리나 서희를 만날 때나,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로 출연한 소프라노 홍혜경에게 환호하는 미국인 관객들을 볼 때는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또 한국인 화가 ‘1세대’격인 94세의 재미 화가 김보현 씨, ‘볼펜 화가’로 유명한 이일 씨, 고 백남준 선생이 제자로 인정한 ‘가로 세로 3인치(7.6cm) 나무판 캔버스의 화가’ 강익중 씨 등은 혹독한 생활고를 견뎌가며 작품 활동에 매진해 지금은 미국 화단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뉴욕 시와 북부 뉴저지, 롱아일랜드 등을 아우르는 메트로폴리탄 뉴욕 지역의 인구는 1889만 명에 이른다. 미국의 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뉴욕 주와 뉴저지 주에 사는 한인 인구는 23만 명 정도. 메트로폴리탄 뉴욕 인구의 1.2%에 불과하지만 이처럼 각 분야에서 눈에 띄는 한국인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 사회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한인 사회의 영향력을 지켜보는 것도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인들은 미국 정치나 투표에 관심이 적었고 그만큼 정치적 영향력도 미미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김동석 유권자센터 상임이사처럼 한인 사회의 정치적 결집력을 키우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많은 한인이 ‘투표권의 힘’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는 주의원, 주지사, 시장, 연방의원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한인 사회를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표를 호소한다.

작년 말 인터뷰를 위해 만난 ‘공감의 시대’의 저자 제러미 러프킨 와튼스쿨 교수는 “한국인을 보면 유대인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먹고살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와 자녀를 뛰어난 인재로 키워 미국 주류 사회에 편입시키고 결국 지도자로까지 키우는 게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들의 위상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언젠가는 한국인들도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에 맞먹는 영향력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대한민국이여, 파이팅!’

                                                                                                                                                                        신치영 뉴욕 특파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