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성인

(141) 성 베드로 가니시오 (12월 21일)

namsarang 2011. 12. 21. 09:00

[금주의 성인]

(141) 성 베드로 가니시오 (12월 21일)

정통 가톨릭 교리 전파 헌신

1521~1597. 네덜란드 출생 및 선종. 예수회 사제. 교회학자



 
 성인은 어려서부터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그는 부모의 든든한 지원으로 보고 싶은 책을 보고,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15살 때 대학에 입학한 성인은 법학, 인문학 등 여러 학문을 섭렵했습니다. 또 신학을 공부하면서 차츰 신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회를 설립한 이냐시오 성인 수제자인 베드로 파브르 신부를 만나게 됩니다. 성인은 파브르 신부의 강론에 큰 감명을 받은 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성소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랜 고심 끝에 예수회에 입회했습니다.
 이후 그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데 눈부신 활약을 펼칩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 등지를 오가며 세력을 확장해가던 개신교파와 이단에 맞서 정통 가톨릭 교리를 전하는 데 헌신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명쾌하면서도 힘이 넘쳐 가는 곳마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거의 붕괴되다시피 하던 독일 교회는 성인이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평을 받을 정도입니다. 성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냉담교우들이 성당에 모습을 드러냈고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이들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물론 그의 인품도 신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한결같이 겸손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고 그토록 많은 인기를 누렸음에도 결코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논쟁을 벌이던 이들도 성인의 인품에는 무한한 존경을 보냈습니다.
 성인의 명성은 유럽 전역에 퍼져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교황은 그에게 주교품을 주려 했지만 성인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사제로 지내야 더 많이 돌아다니며 하느님 말씀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인은 예수회대학과 소신학교 설립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늘 무일푼으로 다녔지만 그가 머무는 곳엔 대학이 생겼고 수도원이 지어졌습니다.
 성인은 교황 신학 자문관으로 활동하고 트리엔트 공의회에 참석해 가톨릭 교회를 개혁하고 재건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성인은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됐고 동시에 교회학자로 선포됐습니다.

 ▲12월 23일. 성 세르불로(St. Servulus). 6세기 경. 이탈리아 로마 출생 및 선종. 장애인. 걸인



 성 세르불로는 소아마비에 걸려 혼자 움직이며 생활할 수 없었다. 가족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거들어줘야 했다. 하지만 워낙 가난한 집안이라 장애가 있는 성인을 돌보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부모는 그를 성 클레멘스성당 앞에 버려두고 도망쳤다. 그는 죽을 때까지 성당 앞에서 구걸하며 살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처지나 가족을 원망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성당 앞에서 살게 돼 기도와 성가 소리를 매일 들을 수 있는 것에 행복해했다. 또 글을 읽을 줄은 몰랐지만 성당을 오가는 이들에게 틈틈이 성경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기도하는 법을 배워 자신의 고통을 하느님께 맡기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갔다. 구걸한 돈이 모이면 자신보다 더 가난한 걸인들에게 나눠주며 나눔도 실천했다. 성인은 세상을 떠난 뒤 성 클레멘스성당에 묻혔는데 교황 대 그레고리오 1세는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늘 불만에 가득찬 신앙인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이라고 성인을 칭송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