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성인

<143> 성 요한 노이먼

namsarang 2012. 1. 1. 19:25

[금주의 성인]

 

<143> 성 요한 노이먼

이주민 보듬는 헌신적 사목



   1811~1860. 보헤미아 출생 및 미국 선종. 미국 필라델피아 주교.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이주민과 아픈 아이들의 수호성인
 
 어려서부터 사제가 되고 싶었던 성인은 신학교에 입학해 사제품을 받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나갔습니다. 또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해 스페인어, 불어, 이탈리아어, 영어, 독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습니다. 어느 곳에서 사목하든 준비된 사제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보헤미아(현 체코)에서 성인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 지역에 본당 사제가 넘쳐나 한동안 사제서품식을 거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인은 낙담하지 않고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당시 많은 유럽인들이 이주하던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성인은 미국 뉴욕에서 사제품을 받아 사목을 시작합니다. 유럽 언어에 능통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이주사목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고국을 떠나온 이주민들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신앙으로 서로 하나가 될 것을 강조했습니다.

 성인은 1842년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에 입회합니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에 투신하며 사랑을 전하는 수도회 영성에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수도회원으로 활발히 활동한 성인은 6년 뒤 구속주회 미국지구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성인은 미국에서 평생 사목하기로 결심하고 1848년 시민권을 얻어 미국에 귀화합니다. 이후 주교품을 받고 필라델피아교구장이 된 성인은 사제였을 때보다 더 열심히 발로 뛰며 신자들을 만났습니다. 특히 교구에 본당과 가톨릭 학교를 세우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또 이주민 공동체 미사를 만들어 이주민들이 고국 언어로 편하게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성인의 헌신적 사목에 필라델피아교구 교세는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물론 이같은 결과를 얻기까지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가톨릭 학교를 세우는데 많은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고 성인을 음해하는 세력도 많았습니다. 한 때 성인은 교구장직에서 물러나려고까지 생각했지만 모든 것을 참고 이겨냈습니다.

 신자들을 위해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았던 성인은 자기 자신에겐 단 한 푼도 써본 적이 없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올 때 신었던 신발로 평생을 지낸 일화는 유명합니다. 성인은 사목방문을 가던 중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길에 쓰러져 숨졌습니다. 성인은 필라델피아 성 베드로 성당에 묻혔고 교황 바오로 6세는 1977년 성인을 시성했습니다.

 한편 미국 구속주회는 지난해 성인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11년부터 2012년 6월 23일까지 '성 요한 노이먼의 해'를 지내고 있습니다.


 
 ▲1월 6일. 성녀 라파엘라 마리아 포라스(Raphaela Maria Porras).
1850~1925. 스페인 출생 및 이탈리아 선종. 수녀. 성심시녀회 설립


 성녀는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읜 성녀는 언니와 함께 수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코르도바에 있는 한 수녀회에 입회했다. 하지만 교구 주교가 수녀회 규칙을 모두 바꿔 서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후 성녀는 마드리드로 가서 동료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며 성심시녀회를 설립했다. 성심시녀회는 신앙교육과 피정지도에 헌신했고 1877년 교황에게 인준받았다. 수녀회 총장을 맡았던 성녀는 1893년 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선종할 때까지 기도생활에 전념했고, 1977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성됐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