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성인

(144) 성 세베리노

namsarang 2012. 1. 8. 19:22

[금주의 성인]

(144) 성 세베리노

노리쿰(오스트리아)을 하느님께로 인도



410~482. 오스트리아 선종. 선교사
 

 성인은 '노리쿰(현 오스트리아)의 사도'로 불립니다. 당시 노리쿰 지역은 야만족들의 잦은 침입으로 사회가 어지럽고 민심이 흉흉하던 때였습니다. 이 때 성인은 노리쿰에서 사람들을 돕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인의 출생과 성장 과정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겉모습만 보면 성인은 영락없는 노숙인이었습니다. 거적때기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맨발로 다녔습니다. 일정한 거처도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았고 끼니도 모두 구걸해서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성인으로 받들며 그의 말씀을 한 번이라도 더 들으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성인을 집으로 초대하려고 경쟁을 벌일 정도였습니다.

 모두가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것만을 챙기려고 할 때에 성인은 늘 비우며 나누는 모범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이 전하는 하느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성인에게 옷과 먹을거리를 주면 성인은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웃에게 남김없이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복음말씀을 전하며 하느님을 믿으라고 선교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복음적 삶인지를 가르쳐주며 세상 눈이 아닌 하느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와 함께 성인은 수도원을 세워 영적 삶을 갈구하는 이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인은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겨울에 강이 얼어붙어 배가 다니지 못하게 되자 노리쿰의 한 도시에 물자가 공급되지 못해 많은 이들이 기아에 허덕이게 됐습니다. 이때 성인이 얼어붙은 강 앞에서 참회의 기도를 바치며 하느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얼음이 갈라지며 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도시 사람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성인은 아픈 이들을 낫게 하며 많은 치유기적을 행했습니다.

 성인의 이같은 활동 덕분에 노리쿰에는 신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성인을 본받아 어려운 가운데서도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성인은 하느님 말씀을 전하다 거리에서 숨을 거뒀는데, 마지막 순간에 '알렐루야, 주님을 찬양하여라'하며 시편 150편을 노래했다고 합니다.
 



 ▲1월 11일. 교황 성 히지노(Pope St. Hyginus). ?~142.(교황 재위 138~142). 그리스 출생. 제9대 교황
 히지노는 그리스어로 '건강한, 유익한'이라는 뜻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선 자세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그는 철학자였다. 교황이 된 뒤에는 교회 성직제도를 재정비하고 사제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설립했다. 당시 횡행하던 이단 그노시스주의(영지주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부정함)에 대항하며 정통 가톨릭 교리를 수호하는 데 힘썼다. 성인은 또 세례 때 대부모를 세우는 제도를 도입한 교황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은 순교해 성 베드로 성당 무덤 근처인 바티칸 언덕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