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성인

(131) 성 다니엘 콤보니- 10월10일

namsarang 2011. 10. 8. 23:16

[금주의 성인]

 

(131) 성 다니엘 콤보니- 10월10일

아프리카 선교의 개척자



10월 10일. 1831~1881. 이탈리아 출생 및 수단 선종. 주교
 
 1831년 3월 15일 이탈리아 북부 산 조반니의 한 농가에서 태어난 성인은 어려서부터 성직자가 되길 원했습니다. 교구 신학교를 졸업한 후 선교사를 양성하는 신학교에 들어가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1857년 마침내 성인은 꿈을 이뤘습니다. 성인과 동료사제 5명이 수단에 선교사로 첫 발을 내디디며 수단교회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선교사들은 풍토병에 걸려 쓰러지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은 결국 아프리카 선교를 포기했고, 성인과 동료 선교사들은 이탈리아로 귀환해야 했습니다. 성인은 치료를 받으며 사경을 헤매면서도 "아프리카가 아니면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되뇌며 아프리카 선교에 굳은 의지를 보였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후 다시 아프리카를 찾은 성인은 1867년 콤보니의 예수성심선교회를 설립하고, 이집트 카이로에 아프리카인을 위한 학교 두 곳을 지었습니다. 1872년에는 니그리지아신심수녀회를 설립했습니다.


 성인은 선교활동뿐 아니라 '아프리카 재건'을 목표로 아프리카인들을 교육하고 유럽 기술을 전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의 목표는 아프리카인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성인은 꾸준히 아프리카인 선교사를 양성하며 아프리카인이 아프리카인에게 선교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노예 거래를 멈추기 위한 노력도 계속했습니다.


 1872년 성인은 수단, 이집트부터 짐바브웨, 말리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을 관장하는 중앙아프리카대목구 부대목에 임명됐고, 1877년에는 대목구장으로 임명됐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선교 기금 마련을 위해 유럽과 아프리카를 쉴 틈 없이 오고 갔습니다.


 1881년 말라리아에 걸려 건강이 악화됐지만 쉬지 않고 선교활동을 계속 했습니다. 결국 그는 그해 10월 10일 평생을 사랑하고 헌신한 아프리카(수단 카르툼)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성인은 2003년 10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10월 9일. 성 루도비쿠스 베르트란두스(Ludovicus Bertrandus). 1526~1581. 스페인 출생 및 선종. 신부.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난 성인은 18살 되던 해 도미니코회에 입회, 3년 후 사제품을 받고 30여 년 동안 수련장으로 일했다. 성인은 타고난 말솜씨로 유명한 설교자가 됐다. 1557년에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를 만나 그녀가 하고 있던 가르멜회 개혁운동을 적극 지지했다. 같은 해 발렌시아 지방에 흑사병이 만연했을 때 수많은 병자를 헌신적으로 돌보기도 했다.


 1562년 남아메리카 콜롬비아에 선교사로 파견된 성인은 인디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성인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1569년에 고향 발렌시아로 돌아온 그는 지방 수도원 원장으로 여생을 보내며 설교교육을 했다. 1581년 세상을 떠난 성인은 1671년 교황 클레멘스 10세에 의해 시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