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연중제23주일

namsarang 2012. 9. 9. 09:30

[생활 속의 복음]

연중제23주일

주님 사랑만이 눈과 귀 열리게 해

▲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 신학원장)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먹고 말 더듬는 장애를 가진 이를 치유하신다.

 우리야말로 눈과 귀가 멀쩡한데도 잘 듣지 못하고, 잘 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이 아주 심각한 일에 집중하다 보면 주변 소리에 둔감해진다. 문소리나 초인종 소리, 교통소음,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할 때가 있다. 심지어 바로 옆에서 말하는 가족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대화에서도 좀체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자기 관심거리만을 말한다. 분명 어떤 큰 생각이 내면을 차지하고 있을 때, 상대방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며 옳고 그름을 헤아리는 분별력도 떨어진다.
 
 #열려라!
 한 청년이 어느 부인을 사랑하게 됐다. 친구들은 이미 그에게 적절한 조언을 했지만 이젠 더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충고를 해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도 달라졌다. 그 청년은 심리적으로 청각장애인이 된 것이다. 사랑에 빠진 그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 안에 빠져 있다.

 청년은 그 부인과 참사랑이 아니라 그녀를 향하는 갈망에 빠진 것이다. 사랑과 갈망은 매우 다른 감정이다. 사랑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특별히 집중하지만, 사람들에게서 오는 관심의 문을 닫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갈망은 사람을 심리적으로 애착하고, 상대의 말을 귀여겨듣지 않게 한다. 사랑은 집착이 아니다. 그 청년은 갈망을 사랑으로 혼동한 것이다.

 집착 같은 갈망은 결과적으로 오늘 복음에서처럼 사람의 귀를 먹게 하고 말을 더듬게 한다. 갈망은 신뢰와 믿음을 내려놓고 오직 자신이 원하는 곳을 향해 오르려고 한다. 하지만 소중한 다른 것에는 마음의 문을 닫아건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는 그러한 갈망이 사람을 속이는 유혹자가 되게 한다고 말한다. 사랑에 빠진 그 청년이 추구하는 것은 갈망이다.
 
 #풀려라!
 수도자에게 요청되는 삶은 말씀을 듣기 위해 침묵을 살아가는 것이다. 수도자에게 침묵은 주님 말씀을 듣기 위한 위대한 영적 유익을 제공한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귀먹고 말 더듬는 청각장애는 겉으로는 침묵과 유사하지만 그것은 해로운 유형의 침묵이다. 오늘 복음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열려라!" 사람의 혀를 풀어주시고 막힌 귀를 뚫어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인생을 살다보면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가까운 사람에게서 오해를 받는다.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래서 다투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결국 말을 하지 않는 일종의 귀먹고 말 더듬는 청각장애 체험을 하게 된다. 괴로운 생활이기에, 분명 그 전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싶고, 화해를 원하며, 용서를 청하고 싶지만, 잘하지 못한다.

 용서는 상대방 잘못을 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마음에 새겨진 미움을 지우는 일이다. 용서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서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이다. 용서는 조건 없이 마음의 상처와 미움, 그리고 억울함을 기억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신을 부정하지 말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때 주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어 만나지 못하는 우리를 움직이시고 참 마음, 신앙, 영을 듣고 느끼도록 고쳐 주신다. 이렇게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우리의 장애를 용서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다.

 그러니 우리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말씀을 살아야 한다. 이는 형제의 아픔을 잘 들어주고, 잘못을 깨끗이 잊으며, 그 용서의 자리에 당신 사랑을 채우라고 말씀하신다.

 인생을 살면서 사람은 혀를 묶어두기도 하고,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말뚝을 박아놓기도 한다. 누가 이런 내적 올가미들을 풀어 줄 수 있을까? 바로 주님이시다. 그분만이 듣고 말하지 못하는 우리 귀와 혀에 침을 바르고 손을 대시며 "열려라" "풀려라"하고 말씀하신다. 영적인 귀와 입은 오직 주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열린다. 그분 사랑이 마음을 두드리며 영적인 혀와 귀로 풀어 주신다.

 사람들의 혀와 눈과 귀가 마비된 사회는 서로 소통할 수 없어 마음의 죄들이 커진다. 그것은 불신이라는 질환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보고 대화하며 관심을 두는 것은 서로 듣고 말하는 소통의 삶을 위해서다. 우리가 제대로 보고 듣고 말하려면, 주님 말씀이 진정 내 안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