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4주일(120916)

namsarang 2012. 9. 16. 10:30

[생활 속 복음] 연중 제24주일

십자가를 지는 순간, 변화는 시작

▲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 신학원장)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는 질문을 하신다.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 '엘리야' 또는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대답한다. 오늘 복음에 우리 자신을 비춰 본다면 당신이 누구냐고 물어보시는 예수님의 참뜻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회개하여라
 요한 세례자는 요르단 강가에서 군중에게 "회개하여라"(마태 3,2)하고 설교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기 직전의 일이다. 요한 세례자의 말은 유다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사람들 심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히브리인들은 나라를 잃고 로마제국의 식민지 생활에 힘들어했다. 항상 새로운 변화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변화를 예언하는 자는 늘 환영받았다.

 군중이 예수님을 '다시 나타난 세례자 요한'이라고 열광하는 것은 당연했다. 정치에는 희망이 없었고, 경제적으로 궁핍했다. 그들이 처한 고단한 삶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희망했다.

 당시 유다인뿐 아니라 오늘날 현대인도 새로운 변화를 기대한다. 하지만 요한 세례자가 외쳤던 "회개하여라"는 설교를 떠올리지 못한다. 자기 마음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세상이 변화되기를 기다리면 안 된다. 오히려 세상을 변화할 수 있는 이들이 주님을 따르는 자신들이라고 믿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탄아, 물러가라

 19세기 실증주의자들은 인간 이성을 사진기에 비유했다. 눈이라는 렌즈가 열리면 뇌 세포막에 바깥세상의 이미지가 그대로 새겨지는 완전한 기계로 이성을 찬양했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은 이와는 다르게 본다. 사물을 알아차리는 인식능력과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식별능력은 기계적이지 않으며, 인간에 따라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도 "존재마다 인식하고 식별하는 게 다르다"고 말했다.

 인간은 마음의 흐름과 마음이 원하는 배경, 각자 소질에 따라 식별한다. 또 그에 따라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바라고 선택한다. 이렇게 인간은 모든 면에서 주도적이고 주체적이다. 모든 사람은 각기 자신만의 방식과 삶으로 사물을 다양하게 바라본다.

 베드로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과 반박을 했다. 베드로는 자신이 누구냐고 묻는 예수님 질문에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답했다. 하느님의 일을 염두에 둔 고백처럼 들린다. 하지만 베드로는 "사람의 아들이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예수님 가르침에 반박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하며 꾸짖으셨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베드로는 자신의 눈과 방식으로 철저하게 사람의 일만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자는 사탄이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인간적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잠시 사람의 일만 생각한 베드로처럼 주님으로부터 물러가야 하는 사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며,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러면 삶에 큰 변화가 오고 회심이 일어난다.

 6세기 베네딕토 성인께서 수도생활을 시작했던 수비아코 경당 벽에는 예수님 공생활을 표현한 성화가 있다. 그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짊어진 나무 십자가는 가늘고 기다랗고 가벼운 것이다. 성화 속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를 어깨에 메지 않고 가슴 앞으로 기대어 안고 걸어가신다.

 성화는 마치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는 초대장과 같다. 주님께 가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세상의 변화는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질 때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