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경축 이동)

namsarang 2012. 9. 23. 22:31

[생활 속의 복음]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경축 이동)

오늘의 순교,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 따라

▲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 신학원장)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이다. 선교사 없이 복음화의 꽃을 피운 한국천주교회 역사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 유례가 없다.

 그 역사는 성경 속 복음의 증거,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는 삶이었다. 18세기 말 남인 신서파 학자들로 시작한 '위로부터의 신앙'이 '백성들의 신앙'으로 내려온 것은 중국 서학 관련 한문서적들을 조선으로 갖고 들어와 즉시 한글로 번역한 덕분이다.
 
 #많은 고난을 겪고
 복음이 새로운 땅에 뿌려지면 순교라는 고통의 싹이 자라는 것은 교회의 오랜 경험이다. 하느님의 일이 왜 그리 어렵고 고통스럽나 하겠지만 성경은 본디 그런 거라고 말한다.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마르 8,35).

 순교역사가 그러하듯 우리가 위로를 받는 점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고통과 어려움을 먼저 겪으신 것이다. 순교자는 길이신 주님을 따라갔다. 복음 안에서 신앙을 지킨 순교자의 고난과 죽음은 온 삶을 끌어당겨 구원으로 향해가는 물결의 흐름과 같았고, 그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계셨다. 산 정상에 오른 자만이 역풍과 비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순교자는 어려움을 겁낼 필요가 없었다. 복음의 용기를 지닌 순교자는 구원을 위해 큰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시각장애 시인은 "약한 자는 자신 안에 믿음을 두지 않는 자며, 자기 안의 부족함에 머무는 자가 작은 자다"는 글을 썼다. 그가 매일 인간을 압박하는 천 가지 어려움을 이겨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인내다. 순교자들의 덕이 인내라면, 박해자들은 생명으로 그들의 인내를 시험하기도 했다. 고통과 죽음은 십자가를 던지고 멀리 도망치는 유혹을 낳게 한다. 하지만 하느님은 어려움 속에서도 순교자가 짊어질 수 없는 무거운 십자가를 주시지 않는다.

 순교자들은 오늘날처럼 복음을 공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 안에 말씀을 움직여 증거했다. 충청도 보령 황일광(시몬)처럼 기쁘게 복음적 삶을 살다간 순교자도 드물다. 백정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냈지만 천주교 입교 후 상상도 못할 대접을 받았다. 신자들은 그를 일반인과 똑같이 대해주었고, 양반집 방에까지 초대했다.

 밝은 성격의 황일광은 "비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그는 서울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의 집에서 하인으로 있으며 땔나무를 하러나갔다가 체포되었는데, 그는 이것도 기쁘게 받아들였고, 고향 홍주에서 한겨울 1월 30일 참수를 당해 두 번째로 천국으로 갔다.

 내포 양반 유군명은 조선에서 사노비가 해방된 19세기 말보다 백년을 앞서 자신이 소유한 노비들을 자유인으로 풀어줬다. 그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는 복음을 실천했다. 같은 신자라도 조선시대 사회 풍습에서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천민을 신분의 벽을 넘어 받아들이는 일과 자신 소유의 노비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은 바로 복음이 움직인 순교의 힘이었다.
 
 #나를 따라야 한다
 영국 성탄절 성가에 성 빈첸슬라오 이야기가 나온다. 빈첸슬라오 왕은 맨발로 다니면서 가난한 자에게 자선과 선행을 베풀었다. 한 겨울 그를 따르는 종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자 빈첸슬라오는 종한테 자신의 발자국을 밟고 따르라고 말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종의 발이 따뜻하게 달아오른 것이다.

 전설 같은 성인 이야기지만, 이 기적이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수반되는 고통과 어려움의 무게는 주님께서 덜어주신다는 뜻과 연관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고통을 당한다면 심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 육적으로 위로를 받게 되듯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주님의 생각과 행동을 닮아 그 고통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구세주와 함께 자기 십자가를 짊어졌던 순교자는 은총을 받을 수 있었다.

 혼자 짊어지는 십자가는 무겁지만 주님과 함께 지는 십자가는 무겁지 않다. 순교자성월을 맞아 우리 모두 순교자처럼 제 십자가를 지며 주님을 따라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