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부활 제6주일 (요한 14,23-29)

namsarang 2013. 5. 5. 14:39

[생활 속의 복음]

 

부활 제6주일 (요한 14,23-29)

 

생명과 평화를 잃지 않으려면

부활 제6주일이며 생명주일이다. 한국 주교회의는 우리 시대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단호히 거부하고, 인간 존엄성과 생명의 참된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 1995년 5월 마지막 주일을 생명주일로 반포했다.

 그러다가 2011년부터 '생명의 문화'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기 위해 생명주일을 5월 첫 주일로 옮겨 지내도록 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지구촌 곳곳에 죽음의 문화가 잔뜩 도사리고 있고 또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죽음의 문화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우리와 함께 생활하시는 주님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현상이다. 죽음의 세력은 개발과 경제성장이라는 허울 좋은 구호를 내세워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병들어 죽어가게 만들고, 마침내 인간 생명마저 손쉽게 앗아가려는 음모를 끊임없이 꾸미고 있다.

 사람으로 오신 주님께서는 생명이신 당신을 향해 죽음의 세력이 어둠 속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을 때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요한 14,23)고 말씀하신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은 생명이신 분의 말씀을 지키고, 그분과 함께 그분 생명 안에서 사는 것이다. 반대로 생명 있는 것들을 무시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이신 분을 사랑하지 않고, 그분께서 마련해주신 부활의 삶을 거부한다. 그런 사람은 죽음의 문화라는 덫에 걸려 결국 죽음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참 생명이신 하느님께서는 생명 없는 우리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주셨다(창세 2,7). 생명의 숨을 통해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셨다. 또 때가 되자 생명이시면서 죽을 몸으로 오신 분이 당신 몸을 죽음과 맞바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몸을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의 삶으로 옮겨 놓으셨다.

 생명이시며 부활이신 분이 건네주신 부활의 삶은 궁극적으로 '평화'로 나아간다. 생명의 문화는 평화를 지향한다. 평화 없이는 결코 부활의 삶을 살 수도 없고, 희망할 수도 없다. 그러나 평화의 삶은 십자가 없이, 자기 고통 없이, 자기 포기와 비움 없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이별의 만찬석상에서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14,27)고 하신다. 이제 참 생명이신 분이 그 생명을 간직하도록 평화를 건네주신다. 참 생명을 건네주시는 분은 곧 참 평화의 주님이시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모두 참 생명을 누리고 싶고, 참 평화를 희망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타인 생명을 빼앗고, 평화를 지키려는 일꾼들을 무참히 억누른다. 평화를 말하면서도 참 평화를 짓밟고, 생명을 원하면서도 참 생명을 거부한다.

 대신 그들이 만들어놓은 거짓 생명과 거짓 평화를 강요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면서도 이 나라 심장부 서울에서는 사람을 쫓아내고 대신 그 자리에 꽃을 심어 사람을 꽃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 얼마나 반생명적, 반평화적 행태인가!

 심장부에서도 이러할진대 변두리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겠는가? 참으로 한심스러운 세상이다.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권리를 소중하게 여긴다면서도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열심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른다는 사람들마저도 죽음의 문화에 팔짱을 끼고 있다. 이 또한 얼마나 서글픈 세상인가!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요한 14,28).

 생명은 거저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거저 일궈지지 않는다. 우리가 생명의 일꾼, 평화의 일꾼이 되지 않으면 결국 죽음의 문화에 의해 생명과 평화를 빼앗기고 말 것이다. 참 생명으로 부활하신 분은 평화의 주님이시다. 부활하신 분을 온 몸으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우리 시대의 참 생명과 평화를 온전히 지켜나가기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사도 바오로는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 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3-14)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살리시는 생명의 하느님이시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시다. 또 갈라진 모든 것을 일치시키시는 평화의 하느님이시다. 그분에게서만이 참 생명과 평화가 샘솟고, 그분만이 참 생명과 참 평화이시다. 그리고 생명과 평화에 참여하는 사람만이 그분이 마련하신 부활의 삶을 누릴 수 있다.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