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일ㆍ자선주일 (마태 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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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형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 | 모든 것을 털어내고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를 봅니다. 앙상한 가지만 남았습니다. 푸른 잎은 모두 떨어져 버렸습니다. 만일 나뭇잎들이 떨어지지 않고 가지에 붙어 있다면 나무는 긴 겨울을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나무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생존의 지혜를 터득한 것입니다. 긴 겨울을 견딘 나무는 봄이 오면 새로운 잎을 틔우고, 여름에 뜨거운 태양을 마음껏 받아들여 열매를 맺으며, 나이테 하나를 더 만들어 냅니다.
오늘은 대림 제3주일이고 자선주일입니다. 교회는 대림 제3주일을 자선주일로 정했습니다. 오늘 미사를 함께하면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분들에게 우리의 사랑과 정성을 나눌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積善之家 必有餘慶'(적선지가 필유여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자선을 베풀면 그것은 썩지 않는 보화가 되어 하늘에 쌓일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나무가 스스로 잎을 떨구듯이 우리가 베풀고 나누는 것은 천상에서의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증표가 될 것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로 나갔느냐?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러 갔느냐? 그런 사람들은 왕궁에 있다! 너희는 왜 나갔느냐? 예언자를 보려고 갔느냐?"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께서 세상이라는 광야로 오신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화려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사람이 되어 오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을 하십니다. "가서 요한에게 전하여라. 소경이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걷게 되고, 귀머거리는 듣는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은 그들에게 선포된 좋은 소식을 듣는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입니다. 이것이 우리들 신앙인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부끄럽지만 저의 이야기를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10년 전에 있던 본당의 한 교우분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분에게는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따님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따님이 나이가 들어 취직을 해야 하는데 받아 주는 곳도 없고, 한곳에 오래 있을 수 없는 따님이 걱정이 되신다며 제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저는 잠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이제 그곳을 떠났으니 그런 문제는 그쪽 본당 신부님께 의논하세요."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부끄러웠습니다.
만일 그 교우분이 사업에 성공했고 제게 커다란 선물을 하겠다고 했다면 그때도 제가 같은 대답을 했을까 생각하니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그 교우에게 한번 찾아오시라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예수님께서 염려하셨던 사람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광야에서 저는 화려한 옷을 찾으려 했고, 명예와 권력을 얻으려 했으며 남들에게 인정받고 대접을 받으려 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고 노력을 해서 얻은 재물을 아낌없이 나누는 것이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여름휴가를 가는 대신에 농촌봉사활동을 가는 것도 즐거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겨울에 혼자 사시는 노인들을 위해서, 장애인복지시설을 위해서 김장을 함께하는 것도 힘들게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그렇게 바보처럼, 즐겁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힘든 일들을 찾아서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보처럼 사는 것 같지만, 이런 분들이 주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알고 있으며, 영원한 삶을 현명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 주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남을 탓하고 심판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고난을 참고 이겨낸 사람들의 본보기로서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예언자들을 생각하라고 이야기합니다."
나눔은 많이 가진 사람만의 몫이 아닙니다.
나눔은 많이 배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구원은 특정한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께 의지하는 사람만이 나눌 수 있고, 그 안에서 기쁨을 얻을 수 있고, 그런 사람만이 우리에게 구세주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