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루카 2,16-21)
| ▲ 조재형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 |
오늘은 새해의 첫날입니다. 교회의 전례는 새해의 첫날에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참된 평화를 주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세계 평화의 날'로 정했습니다. 둘째는 참된 신앙인이며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위한 날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몸에 10개월간 머물다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어머니 몸이 우리의 세상이었고, 우리는 어머니 태중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세상에 나와서도 어머니의 끊임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새해 첫날,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새해의 첫날을 시작하며, 샤를르 드 푸코 사제의 시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조금 길지만,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임을.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십오 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함을 나는 배웠다.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린 것임을. 또 나는 배웠다. 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 낸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을."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아기 예수님을 처음 받아준 손은 목수 요셉의 거친 손이었고, 그분을 처음 맞아들인 장소는 누추한 구유였습니다. 그분께 찬미와 찬양을 드린 첫 번째 사람도 밤을 지새우던 가난한 목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 강생의 짧은 이야기는 약하고 보잘것없는 곳, 비천한 사람들 안에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의 핵심 진리가 있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내 안에 깊이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그곳이 나를 구원할 내 '인생의 구유'입니다.
건강한 아이를 입양하기도 힘든데, 장애아를 입양해서 사랑으로 키우시는 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장애인인 아들을 위해 함께 뛰는 분이 있습니다. 버려진 이들, 병든 이들, 장애인들 속에서 작은 예수를 보았고, 그들을 위해 평생을 살아가는 분도 있습니다. 화려한 꽃이 되기보다는 썩어 양분이 되는, 거름이 되는 분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평화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총과 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거창한 행사나 사업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처럼 겸손과 순명으로 삶의 모든 파도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님, 불쌍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귀양살이 끝날 때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뵙게 하소서.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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