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주님 세례 축일(마태 3,13-17)

namsarang 2014. 1. 11. 21:27

[생활속의 복음]

주님 세례 축일(마태 3,13-17)

 

▲ 조재형 신부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예전에 성지순례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개신교회에 다니는 자매님께서 천주교회를 다니는 언니와 함께 성지순례를 왔습니다. 기도 생활도 잘하고,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하는 전형적인 열심한 개신교회 신자였습니다. 언니는 동생 못지않게 열심한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남편과 함께 성물판매소를 하고 있으며, 신앙생활이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를 영하는데 동생은 영성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를 하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동굴에서 예수님 그림을 보고 그 동생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데 언니가 조용히 이야길 합니다. 동생이 세례 받기를 원하는데 주면 어떨까요? 순간 생각했습니다. 저 열심한 개신교 신자가 지금 마음이 흔들릴 때 세례를 주고 천주교로 확 끌어들일까! 하지만 다시 생각했습니다. 돌아가 본당에 가서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으라고. 그 동생은 정말 열심히 교리를 배웠고 성탄 무렵에 헬레나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언니에 뒤지지 않는 열심한 신자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개신교회에 다니는 분들 중에 천주교로 개종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 중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한국이름 이외에 서양이름이 있는데 자기도 그런 서양이름을 갖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주교에 와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긴 가브리엘, 베드로, 젬마, 헬레나, 루카 이런 이름이 있다는 것이 천주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멋있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례가 단순히 새로운 이름 하나 더 얻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세례란 무엇인가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저는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면서 예전에 보았던 신문의 기사 내용이 생각납니다. 중국에서는 장군들이 매년 병사들과 함께 내무반에서 며칠 동안 함께 지낸다는 기사였습니다. 장군들은 군 생활을 오래했지만 장군이 되면서 병사들과는 많이 떨어져서 지내게 되고 그래서 병사들 고충이 무엇인지, 병사들 분위기가 어떠한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의 장군들은 매년 며칠씩 병사들과 함께 내무반 생활을 하고 병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병사들과 일체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체험이 장군들에게도 좋은 시간이 되고 있으며 병사들도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국방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고 중국 장군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 장군들도 그런 체험을 할 것이라고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특권층'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그런 특권층은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특혜를 받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이야말로 '특권층 중에 특권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 몸소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자세를 보여주셨습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과 권한이 있지만 섬기려는 삶을 사는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세례를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은 특혜를 받고 섬김을 받고 그래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삶은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않는 삶, 심지가 깜박거린다고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않은 삶이었으며 성실하게 바른 인생길을 걸어가는 삶이었습니다. 소경들의 눈을 열어주고, 감옥에 묶인 이들을 풀어주고 캄캄한 영창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놓아주는 삶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자녀가 되었고 주님의 자녀로서 권리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세례'가 곧 구원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례로써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례는 이제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세례 받은 신앙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사랑받는 하느님의 자녀


첫째, 바른 인생길을 가야 합니다.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고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해야 하며, 성실하게 바른 인생길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소경의 눈을 열어주고, 감옥에 묶여 있는 이를 풀어주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그러면서 오늘 요한 세례자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모든 영광과 기쁨은 하느님께로 돌리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하느님께서는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 다 받아주시듯이 세례를 받은 사람은 모든 이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할 용기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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