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올바른 관계는 전통을 넘어서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
2004~2005년에 많은 사람이 본 영화가 있습니다. 혹시 기억나시는지요? 「트로이」「알렉산더」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 「왕의 남자」입니다. 세 영화의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동성애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다룬다는 것입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관객들이 동성애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트로이」는 사촌인 아킬레스와 페트로 클루스의 동성애적 모습을 보여줍니다. 「알렉산더」는 알렉산더의 신하이자 친구 사이인 헤파이션을 동성애자로 그립니다. 「왕의 남자」는 이런 세계적 흐름에 함께하면서 연산군과 광대의 동성애적 사랑을 비극적으로 다룹니다.
이런 흐름은 2003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동성결혼 허용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내 문제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하나의 예입니다. 그리고 2015년 6월 26일 미국은 “전 지역에서 동성결혼을 허락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미국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스 시대에도 전반적으로 존재했습니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신들에 대항하는 강력한 인간인 ‘안드로귀노스’를 통해 남녀 간 사랑과 동성 간 사랑에 대한 기원을 이야기합니다.
교회는 분명히 동성결혼을 반대합니다. 교회는 왜 동성애를 반대할까요? 교회는 혼인의 목적을 “부부간의 사랑과 일치를 통한 자아의 완성과 자녀 출산과 교육”으로 정의합니다. 동성결혼은 자녀 출산이 배제됩니다. 만약 동성 부부가 아이를 입양해 키운다면, 양성 부모의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자녀는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요? 온전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야 하는 아이들의 기본권을 무슨 권리로 빼앗을 수 있는 것인가요? 인간의 전통이고 감정이기에 받아들여져야 하는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외적인 관습과 형식에 치우친 이들에게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마르 7,8)라고 결론을 내리시며 참된 하느님의 계명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십니다. 그것은 마음과 마음으로 맺어진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신뢰하고, 자신의 주어진 삶에서 하느님을 닮아 가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삶임을 선포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통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들을 ‘위선자’라고 부르십니다.
어떻게 해야 인격적인 관계, 진리의 관계, 참 인간으로 살아가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내 성향이나 성격에 맞춰 다른 이를 대하고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타인에게 고통과 눈물을 주는 것이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일까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과외를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이 넉넉한 형편의 아이들과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정불화 때문에 가출한 청소년들에게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충고와 권유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젊었을 때 미리 준비하지 않아서 그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고 말하는 것이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올바로 맺게 하는 것일까요?
오늘 제2 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하느님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야고 1,27)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희망을 품고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해 하느님,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전통과 관습에 물들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보살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느님과 대화하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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