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참 생명을 따르는 이들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
요한 복음 6장 말씀을 묵상하는 네 번째 주일입니다. 다음 주일 복음으로 요한 복음 6장은 마무리됩니다. 우리 교회는 왜, 이 더운 한여름에 ‘생명의 빵’이라는 주제로 한 달 이상을 살아가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위로하시고 참 파스카의 삶으로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열정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요한 복음 6장 시작 부분에는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요한 6,4)는 말씀이 나옵니다. 저자는 이 시기를 언급하며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유다 백성들이 자유와 참 인간 삶을 찾아서 험난한 고통의 여정을 시작한 위대한 출정을 상기시킵니다. 또 그들이 이집트에서 누리던 편안함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철저하게 하느님께 의지하고 살아갔던 멋진 기간이었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오늘은 ‘파스카’에서 이름을 떨친 모세나 아론이 아닌 가난하고 나약하고 무식했던 이름없는 유다의 여인들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사내아이들을 죽이라”는 이집트의 공권력을 거부했던 산파들(시프라, 푸아)이 있었습니다.
어느 부모인들 자기 자식이 예쁘지 않겠습니까만 공권력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어머니 요케벳은 석 달 동안 아이를 숨기며 키웠습니다.
삶과 죽음의 순간에 슬기를 발휘해 생명을 지킨 미르얌은 어리고 약한 여자아이였습니다. 유다 사회에서 가장 무시 받던 부류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여기고 살았음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이에 반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인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요한 6,52)라며 서로 말다툼을 벌입니다. 요한 복음은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떠나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요한 6,66)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있다는 사람,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등 기득권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떠났습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학식ㆍ종교적인 지식이 부족한 이들은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미사를 드릴 때마다 말씀의 식탁과 성찬의 식탁에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지식이나 지위가 더하다고 해서 하느님 말씀을 더 듣는 것은 아니고 영성체를 두 번 하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 똑같은 말씀을 듣고 똑같은 성체를 모시며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모든 말씀을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역사 안에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요? 예수님처럼 이웃과 화해를 이루면서 살고 있는지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고 그들 처지에서 생각해보고 있는지요? 나와 다른 말과 생각을 한다고 그들을 벼랑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는지요? 저도 이러한 질문에서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매번 이러한 장애물에 넘어지고 상처 입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1983년 3월 4일 니카라과를 방문하신 적이 있습니다. 공항에는 “하느님과 혁명 덕분에 자유를 얻은 니카라과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산디스티나 혁명 정권 초대 문화장관으로 임명된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가 공항에 마중 나와 무릎을 꿇고 교황의 손에 입을 맞추려 하자 교황님은 집게손가락으로 카르데날 신부를 가리키며 “너의 본분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리고는 40도가 넘는 무더위에 70만 명이 운집한 미사에서 니카라과를 “제2의 폴란드”로 언급하면서 신자들과 사제들을 비판하셨습니다.
이에 반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난해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1917~1980, 엘살바도르)를 성인 반열에 올리셨고, 니카라과 산디스티나 정권에서 외무장관, 유엔총회 의장(2008~2009)을 지내기도 한 미겔 데스코트 브로크만(메리놀회, 82) 신부의 정직 처분을 29년 만에 해제하고 복권하기도 하셨습니다. 물론 시대적 상황을 중요하게 바라봐야 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생명의 빵은 예수님의 온몸과 삶입니다. 또한 서로를 위해 다가서고 나누는 용서와 화해의 빵입니다. 예수님을 떠날 것인가요? 예수님과 함께할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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