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영원히 산다는 것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
저는 정말 여름을 싫어합니다. 싫어하는 여름에 정치인들과 여러 국가 정책들을 보면서 더 힘들고 짜증이 나는 상황입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전해지는 소식은 하나같이 싸우거나 속이는 내용입니다. 아니면 부도덕한 행태를 알리는 소식입니다.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두려울 정도입니다.
여러 좋지 않은 소식 중에서 요즘 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공권력, 국가 기관이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했다는 소식입니다. 헌법 18조 ‘통신의 자유’에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개인의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헌법이 무너진 사회이고, ‘인간다움’의 근본적 사유와 행동의 자유가 박탈당한 참담한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뉴스를 보며 우리의 생활 습관도 반성해 봅니다.
2013년 4월 26일부터 5월 16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순례한 적이 있습니다. 먼저 순례한 사람들의 조언보다는 미국에서 발간된 안내책자를 기준으로 순례 계획을 짰습니다.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한국 사람들이 머물지 않을 만한 장소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외국에서 만나는 한국인 대부분이 묻는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어디서 오셨나요? 왜 혼자 여행하시나요? 무슨 일 하시는 분이세요?” 이런 질문들 말입니다. 혼자 조용히 선교사로서 삶을 정리하고 새롭게 한국에 적응할 준비를 하기 위해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우연히 만나는 한국 사람들의 ‘신상털기’는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사실대로 답을 하면 계속 말을 걸어올 것이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고심 끝에 고육책을 찾았습니다. 아침 일찍 일정을 시작하고, 한적한 시골 성당 숙소에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혼자 걷다가 9일째 되던 날 토산토스(Tosantos)라는 시골 마을 성당 숙소에 다다랐습니다. 거기서 5년째 봉사하고 있는 스페인 사람 마리아ㆍ후안 부부를 만났고, 숙소 2층에 있는 작은 다락방에서 순례객들과 ‘떼제기도’를 함께 바친 후 “서로 질문은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산티아고에서 볼리비아인 연인에게 청혼을 준비하는 미국인 변호사의 사랑 이야기, 이탈리아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2년간 식당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는 끼아라의 이야기, 페루 태생으로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니며 경제학을 공부하던 데이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곳에 있는 이유를 자유롭게 말했고, 순례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도 기도드렸습니다. “10년 동안 페루에서 선교사로 살아가면서 부족한 모습을 보였던 저를 사제로 받아주고 제가 화를 내도 너그럽게 받아줬던 페루의 가족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페루 가족을 위해 순례 마지막 날까지 매일 묵주기도 100단을 봉헌하기로 하느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감사 기도를 드리며 페루의 가족들이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진정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요한 6,41)라고 말씀하시면서 ‘외적인 빵’에 갇혀 있는 유다인들에게 참된 빵의 의미를 가르쳐주십니다. 또한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라는 말씀을 통해 영원한 삶이란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과 함께하는 삶이라는 것을 선포하십니다.
우리가 생각과 말과 행동을 예수님 말씀과 일치하려 노력하고, 조금씩 예수님과 일치를 향해 나아가고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며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페루의 가족들이 그립습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예수님의 마음과 미소가 떠오릅니다. 비록 가난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불편한 삶을 살고 있지만,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용서와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그들이 제게는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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