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최고의 선물인 대화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
교우 여러분 건강하게 여름을 지내셨습니까?
제 질문에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아마도 별 느낌이 없으셨을 겁니다. 이유는 일단 여러 사람에게 너무나 많이 들은 질문이고, 말이 아닌 글로 이뤄진 질문이기에 질문을 하는 제 표정이나 목소리의 높낮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화라는 것은 진실한 마음이 만나는 자리이고,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경이 함께하는 문화이며 인간만이 누리는 행복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원시 인류가 우리에게 전해준 선물 중 가장 소중한 것 3가지를 고르라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학자들은 보통 ‘언어’(공동체 생활의 근간), ‘불의 사용’(발견), ‘활과 화살’(관념의 현실화)을 이야기합니다. 세 가지 중 언어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인간은 다른 육식 동물과 비교하면 힘도 약하고 신체적 우월성이 부족했습니다. 그러기에 서로 도움이 필요했고 교육을 하고 경험을 나누며 삶을 유지한 것입니다. 언어(대화)는 인류가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대화가 단절된 사회, 서로 듣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만 키우는 사회, 자기 생각과 이념을 표현하는 데 두려움을 겪는 사회는 인간다움을 파괴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상황을 보시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십니다.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마르 7,32)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귀먹고 말 더듬는 한 인물을 치유하신 사건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저자는 예수님의 여러 행위 중에 귀머거리와 벙어리 치유사화를 기록했는지 의도가 궁금해집니다.
재미있게 본 드라마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로마」라는 드라마입니다. 로마 공화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언론의 역할을 하는 인물(뉴스 캐스터, 거리에서 포고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5명 이상 집회나 모임을 금지하는 포고문을 발표합니다. 이처럼 사회가 온전하지 못할 때 언론과 공공집회 그리고 모든 형태의 소통을 통제한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히틀러는 나치 독일 당시 선전부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를 통해 1933년 5월 10일 독일 전역의 도서관을 급습해 2만 5000여 권의 책을 소각했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헬렌 켈러의 책도 불태웠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보면 김부식의 「삼국사기」 외에도 수많은 역사서가 존재했지만, 그 많은 책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사대파’ (김부식)와 ‘자주파’(묘청)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대파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역사서들을 숨겼기 때문입니다. 「세조실록」과 「예종실록」을 보면 조선 시대에도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 처참한 사건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된 1910년부터 2년 동안 일본인들이 20여만 권의 책을 없앤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치유 행위로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의 출발점이 대화임을 선언하십니다. 하루빨리 우리나라 지도자와 위정자들도 대화를 통해 인간을 존중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도 성직자와 평신도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가 각자 직분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가 됐으면 합니다.
저는 페루에서 선교사로 있던 시절 교황대사로 재임하셨던 이탈리아 출신 부르노 무사로 대주교님을 존경합니다. 2010년, 페루 시쿠아니 대목구의 차기 주교 임명을 앞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무사로 대주교님은 1박 2일 동안 교구 신부님들과 함께하며 차기 주교님, 대목구의 미래를 주제로 진솔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모든 격식을 내려놓고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모든 사제가 자유롭고 편안하게 교황 대사님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열정과 감동이 저를 감싸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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