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조상님들, 존경합니다!”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
얼마 전 환자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병동 전문의가 쓴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 “만약 오늘 밤에 죽음을 맞이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만약 24시간 만의 삶이 주어진다면 지금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저자는 “평소처럼 맛있는 것을 먹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잠을 자듯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고 의미 없는 결론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도 곧 저자 생각에 동의하게 됐습니다.
아마 책을 통해 이런 고민을 접하지 못했다면 제게 24시간이 남았을 때 용서, 화해, 감사의 인사 등 너무나 많은 것을 정리하려다가 아쉬움과 공포만 느끼며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매일 밤마다 죽음을 맞이하고, 아침에는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체험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저를 여유롭고 너그럽게 생활하도록 변화시켰으며, 욕심과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아마도 신앙 선조들도 이런 삶을 체험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느님과 만남을 통해 영원한 삶을 믿고 기쁘게 살았을 것입니다. 정하상 바오로 성인께서 쓰신 「상재상서」에는 “옛 군자가 법을 세워 금령을 펼 때 반드시 그 이치가 어떠하고 해(害)됨이 있는가를 알아보았습니다. 무릇 의리에 맞는 것이라면 비록 나무꾼의 말이라도 성인이 반드시 받아들여 내버리면 안 되는 말로 되어 있거늘, 우리나라의 천주성교(天主聖敎)를 금하시는 것은 그 뜻이 어디 있습니까?”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성인의 확고한 신념과 진리에 대한 자신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상재상서」를 자세히 읽기 전에는 우리 신앙 선조들이 죽음의 고통을 당하면서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건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도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신학문을 통해 사회 지배 계층으로 진출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이 있었습니다. 박해 시대가 끝나자 조선 가톨릭 교회는 제주도 신축교난(이재수의 난)에 침묵했고, 또 일제 강점기 동안 제국주의 선교사들과 함께 일제의 침략 행위에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단순하게 한 개인의 삶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성인ㆍ복자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익명의 많은 신앙 선조들은 믿는 바를 실천하기 위해 문명의 이기, 사회적 성공이라는 유혹을 극복하고 외진 산골에서 생활했습니다.
제가 지금 생활하는 경북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 지역은 1899년도에 3명의 성인 남자가 세례를 받으면서 신앙촌이 형성된 곳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2000년도까지 마을 입구 도로가 포장되지 않았던 시골 지역입니다. 앞에는 낙동강이 흐릅니다. 나지막한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 사람들이 왕래하기 쉽지는 않은 지역입니다. 하지만 사제 40여 명과 수많은 수도자를 배출한 ‘성소 성지’입니다.
농촌 고령화로 인해 지금은 70명의 주민이 생활하는 조그만 시골 마을이 됐습니다. 주민의 80%가 가톨릭 신자라 마을 잔치는 바로 본당 잔치가 되고 전례 시기에 따라 마을의 행사와 농사가 이뤄집니다.
이곳에서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페루 산골 지역에서 선교사로 생활할 때는 혼자 미사 준비를 하고(성당 청소, 성가준비 등),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야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기쁨과 환희 그리고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이 함께해야 하는 미사 시간이 매 순간 고민을 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이곳에서는 그런 고민과 걱정이 없습니다. 순교 성인들의 후손인 본당 신자분들이 스스로 성당을 청소하고 기도를 바치십니다. 그리고 성사생활을 충실히 하며 떳떳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십니다. 세상의 성공과 명예라는 가치를 초월하신 교우 분들을 보며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순교 성인 조상님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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