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참 사제이신 예수님

namsarang 2015. 10. 25. 17:16

[생활 속의 복음]

참 사제이신 예수님

 

연중 제30주일(마르 10,46-52)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지난 7월 교구 신부님 몇 분과 함께 은퇴 후 시골 조그만 공소에서 행복하게 사목하고 계신 전임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님을 찾아뵀습니다. 최대한의 정성으로 저희를 맞이하시는 주교님의 모습은 함께 했던 신부님 모두를 감동하게 했습니다.

1989년 수원교구 군포본당 주임으로 사목하고 계실 당시 제가 성소에 대한 갈등으로 면담했던 것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갈등을 겪는 아들을 정성을 다해 돕는 아버지와 같은 자비로움을 느꼈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마당에서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시는 모습을 보며 할아버지와 손자들의 만남처럼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너그러움으로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고 힘들고 어려운 이들의 이웃으로 살아가시는 참 사제의 향기도 느껴졌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눈먼 거지가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마르 10,47). 가난하고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이의 외침은 로마로부터 박해와 사회적인 차별을 받은 로마의 초대 교회 신자들 외침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에서 볼 수 있듯이 유다인들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힌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모습, 학수고대하던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이 언제 어떻게 올지 몰라서 고민하는 약한 신앙심을 가진 신자들 모습도 보입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가난한 장님’은 지금 우리 사회에도 너무나 많습니다. 좋은 학연, 든든한 배경이 없어서 명퇴를 당하고 길거리로 내몰리는 절박한 가장들, 아무리 노력해도 희망을 찾지 못하고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시야를 외부로 돌리면 더욱 참담합니다. 종교적인 갈등과 각국의 이익관계에 의해 사지로 몰리는 난민들을 보면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신자유주의와 기술중심주의로 인해 질병과 가난을 대물림하며 살아가는 제3세계 사람들이 눈에 자꾸 떠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부르짖음에 응답해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는 모두 세례 때 예언직, 사제직, 왕직을 받습니다. 예언직은 하느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세상에 힘차게 그리고 정확하게 전하고 실천하는 직분입니다. 또 세상의 유혹과 죄에서 하느님과 관계를 단절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죄를 드러내고 회개를 선포하는 직분입니다.

사제직은 하느님과 인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직분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는 “그도 자기 약점을 지니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히브 5,2)라고 하면서 죄를 세상에 드러내고 밝혀 정의를 실현하기보다는 인간적인 나약함을 너그러이 용서하시는 ‘자비의 하느님’ 직분을 강조합니다.

또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대사제”(히브 5,6)라는 선언을 통해 사제직과 예수님과의 일치는 일시적 주변의 상황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임을 보여줍니다.

왕직은 봉사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세상 사람들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 인간적인 존엄성과 행복을 체험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진정한 사제직 직분을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십니다. 저는 얼마 전 최덕기 주교님을 통해 참 사제직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거의 매일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행동하시는 참 사제를 만나고 있습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종님이십니다.

지난 7월 9일 볼리비아 성체대회에서는 “아무도 버려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셨고, 3일 후 파라과이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나 주인, 규율과 규제로 무장한 관리자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이기주의와 갈등과 분열과 미신의 길에서 돌아 나와 생명과 관용과 사랑의 길에 들어서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라며 자비와 관용을 통한 하느님의 사제직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생활속의 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험한 두 가지 생각  (0) 2015.11.08
매일 만나는 하느님  (0) 2015.11.01
왜 선교하나  (0) 2015.10.18
부자와 좋은 사람  (0) 2015.10.11
위로와 사랑의 축제를  (0) 2015.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