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위험한 두 가지 생각

namsarang 2015. 11. 8. 14:04

[생활 속의 복음]

위험한 두 가지 생각

 

연중 제32주일(마르 13,38-44)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프랑스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10월호 머릿기사에 ‘어느 독보적 언론의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발행인 세르주 알리미의 글이 실렸습니다. 논지는 “전 세계 언론 대부분이 거대 자본가와 결탁해 세상의 소식을 정리하고 진실을 왜곡한다”는 것입니다. 예로 ‘루퍼트 머독’을 이야기했습니다.

 

머독은 미국의 퇴직자들이 환호하는 24시간 뉴스 채널인 폭스미디어, 일간지 뉴욕 포스트,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 유명인의 스캔들과 사생활을 보도하는 영국 일간지 더 선의 소유주입니다. 그와 그가 소유한 언론의 목표는 ‘국민을 위한 신문의 기획과 편집’이 아니라 위압적인 언론 권력과 거대 자본으로 세상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진정한 언론의 역할을 하려면 기부금이 광고 수주액을 초월해 재정적인 독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우리나라 언론 매체를 생각해봤습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우리가 몰랐던 여러 새로운 사실들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특히 한국조폐공사가 만드는 주민등록증과 전자 여권에서 유아용품에 적용되는 기준치의 51배가 넘는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주요 신문 방송에서 그에 관한 기사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반면 지난 8월 18일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주요일간지는 전북교육청이 ‘삼성 드림 클래스’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소외계층 배울 기회 뺏은 전북 교육감’, ‘아이들 교육 기회 차버린 전북 교육감’ 등 자극적인 제목으로 삼성의 입장에서 보도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우리 언론의 시각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자본에서 자유로울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시대적인 상황과 주변의 편견 때문에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과부의 봉헌을 새롭게 평가하십니다. 분명 과부는 자신의 봉헌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부자가 되거나 새로운 남편을 만나게 해 달라는 바람을 담은 봉헌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과부의 봉헌은 현재까지의 모든 습관과 생각 그리고 상황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겠다는 결심을 표현한 것이고, 그의 봉헌에는 율법을 초월한 하느님 이해가 바탕이 됐을 것입니다. 배신자이자 사기꾼인 야곱이 에사우와 화해를 통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모습(창세 33,1-11)과 사렙타에서 한 과부가 예언자 엘리야에게 빵을 나누는 모습(1열왕 17,8-18)도 오늘 복음의 과부와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몇몇 성직자들은 가난한 과부의 봉헌 의미를 다음과 같이 왜곡하기도 합니다. “전 재산을 하느님께 봉헌하라”는 이도 있고, “열심히 기도하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받았다고 착각하면서 죄를 뉘우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복음 어디를 보아도 “열심히 기도하고 예수님 말씀을 잘 실천하고 살아가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세상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받을 것”이라는 내용은 찾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율법주의’입니다. 정해진 규칙을 따르면 하느님의 축복과 보호를 받는다는 위험한 생각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입니다. 요즘 “교종이 지구상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고 말하는 교회 내 보수주의자와 미국의 극우주의자가 있습니다. 그들이 교종을 위험한 인물로 단정하는 이유는 교종께서 낙태와 동성애자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우상이 되어버린 자본’, ‘사람을 죽이는 경제’라는 표현으로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와 기술주의를 비판하셨기 때문입니다.

무한 경쟁과 율법주의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가난한 과부의 새로운 출발이 멋져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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