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매일 만나는 하느님
모든 성인 대축일(마태 5,1-12)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
겨울의 문턱에서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과 위정자들이 만들어내는 차가운 바람에 추위와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시기입니다. 시골은 추수의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수확의 기쁨을 느끼며 너그럽고 신명 나는 축제를 지내야 하는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의 가치, 낮은 농산물 가격 때문에 모두가 불편해 하는 상황입니다.
요즘 한국 사회는 16~17세기의 스페인을 보는 듯합니다. 스페인은 국토회복운동(722~1492) 성공으로 국가를 통일하고 외부 세력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1492년 크리스토발 콜론(Cristobal Colon, 콜럼버스)의 새로운 지역(아메리카) 발견 이후 엄청난 노예매매로 경제적 부흥을 이룹니다.
부를 축적하고 자신감이 생긴 스페인은 포용과 관용을 통한 새로운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소수의 부르주아(자본가 계급)와 지배 계층의 이권을 위해 펠리페 2세(재위 1556~1598)를 중심으로 철저한 왕권 중심 통치체제를 강화했습니다. 군비를 확장하고, 가톨릭 교회에 대한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종교와 문화 또한 획일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은행과 금융 업무를 담당하던 유다인들, 기초 과학과 철학 부문에서 뛰어난 재능을 지난 무슬림들 그리고 신흥 지식인 계층이었던 신교도들이 하나둘씩 스페인을 떠나게 됩니다. 결국 다양성을 잃은 스페인은 네덜란드,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경제 정책 실패로 퇴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에 반해 종교적 다양성을 인정하며 많은 유다인을 받아들이고 예술과 학문에 대해 개방 정책을 펼친 네덜란드가 세상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교회도 스페인의 상황과 비슷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새로운 가르침이 가난한 이들과 지식인층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전통을 중시하고 변화를 반대하는 유다계 그리스도인과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이방계 그리스도인의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초대 교회 지도자들이 유다교의 전통만을 고집했다면 지금과 같은 교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갈등을 사도 바오로의 서간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 2장은 ‘그대’라는 2인칭 호칭을 쓰면서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저지르는 죄를 똑같이 행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초대 교회는 예루살렘 공의회(49년)를 통해 다양성을 인정하게 됐고,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지상 교회로 종교의 자유(밀라노 칙령, 313년)를 얻고, 로마의 국교(테오도시우스 황제 포고, 392년)가 된 교회는 아무런 방해와 고통 없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의 보유자이자 수호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다양성을 잃고 세상의 가치에 집중하면서 엄청난 부와 권력을 지닌 국가의 형태로 변절하게 됩니다.
그런 암흑의 시기에 하느님께서는 교회에 선물을 주셨습니다. 교회 분열 그리고 16세기 스페인 성인ㆍ성녀(로욜라의 이냐시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아빌라의 데레사, 십자가의 요한)입니다. 피렌체의 사보나롤라(1452~1498), 마르틴 루터(1483~1546), 칼뱅(1509~1564)을 통해 교회는 자성의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또 성인ㆍ성녀의 삶과 사상은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줬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성인ㆍ성녀를 기억합니다. 또 그들의 삶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수호성인들은 한 가지 방법과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생활하신 분들이 아닙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온 힘과 열성을 다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신 분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각자 처한 삶의 상황 안에서 당신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올바른 관계를 맺길 원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참 행복을 만나게 됩니다. 참 행복은 세상이 추구하는 획일화된 가치를 따르는 삶이 아닙니다. 복음은 다른 이의 생각과 삶을 존중하는 삶이 참 행복의 시작임을 말해줍니다. 수호성인들은 우리가 매일의 삶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오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도와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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