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순 제2주일입니다. 캔터베리의 안셀모 성인은 “좋으신 주님, 당신 빛으로 믿게 되었으니 감사드립니다”라는 열정이 담긴 고백으로써 하느님의 실존(實存)을 널리 알리셨습니다. 모름지기 사순 시기는 열기(熱氣)가 떨어진 우리의 믿음을 다시금 달구는 때입니다.
1.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창세 12,1)
독일의 시인 칼 부세(Karl Busse)는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애를 써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 모두들 행복이 있다고 말하기에 / 남들 따라 나 또한 찾아 갔건만 / 눈물 지으며 되돌아왔네”
오늘 제1독서는 아브람이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창세 12,1)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창세 12,4)고 알려줍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과연 아브람에게 행복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브람도 누구 못지않게 행복을 갈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아브람은 ‘행복이란, 세상 사람들 누구나 쫓는 그럴싸한 세상적인 조건들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이끄심에 따를 때 누리는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2. 그리스도께서는 환히 보여주셨습니다(2티모 1,10 참조)
클리프턴 월터스가 지은 「무지의 구름」에 따르면 “사람이 자신의 이해력만으로는 창조되지 않은 영적 존재, 다름아닌 하느님을 알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해력에 한계가 있는 이유를 인식하면 알 수도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그분을 아는 지식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제2독서에 보면, 바오로 사도께서는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은총을 환히 드러내 보여 주셨다”(2티모 1,9-10 참조)는 말씀으로 티모테오를 깨우쳐주십니다. 참으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을 올바로 알 수 있습니다.
3.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오늘 복음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합니다.(마태 17,4) 이 두 인물에 대하여 로마노 과르디니(R. Guardini)는 모세를 ‘내적인 불신앙’에서 이스라엘을 건져낸 인물로 묘사하고,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외적인 불신앙’에 맞서 싸운 상징으로 풀이해줍니다.
우리는 ‘엿새 뒤’(마태 17,1)마다 주일을 맞이합니다. 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사도가 올랐던 ‘높은 산’(마태 17,1)처럼 주님의 성전을 찾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처럼 빛나는 얼굴과 빛처럼 하얘진 옷을 차려 입으신”(마태 17,2 참조) 주님의 모습을 제대로 만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우리의 믿음이 ‘욕심, 고집, 우둔, 교활, 맹목, 반역, 완악, 우상숭배, 폭력, 범죄, 악, 어둠’으로 인하여 주님의 바람처럼(2티모 1,9 참조) 성화(聖化)되지 못한 때문입니다.
4. 두려워 말고 일어나라(마태 17,7 참조)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같은 뜻인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라”는 속담을 인용하시며, “이기주의의 노예가 된 우리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봉사와 겸손 그리고 넓은 아량을 지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마태 17,4)라는 베드로 사도의 감격에 공감(共感)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고, 또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몰랐던”(마르 9,6; 루카 9,33 참조)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이 오히려 더 분명하게 잘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마음이라야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행복이고, 충만한 은총의 모습입니다. 아무쪼록 사순 시기를 통하여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마태 17,8 참조) 믿음으로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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