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중 제8주일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은 “창조주가 없으면 피조물도 없어진다”(「사목헌장」 36항 참조)고 천명하였습니다. 이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도리(道理)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마태 6,33) 것입니다.
1.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5)
이른바 ‘댓글 시인(詩人)’으로 알려진 분의 ‘그 쇳물 쓰지 마라’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광염(狂炎)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 그 쇳물 쓰지 마라 / 한(恨)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 그 쇳물 쓰지 말고 /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 정성으로 다듬어 / 정문 앞에 세워주게 / 가끔 엄마 찾아와 / 내 새끼 얼굴 한 번 만져보자, 하게”
이 시는 2010년 9월 7일 충청남도 당진의 한 제철소에서 20대 청년이 용광로에 빠져 숨진 사건에 달린 댓글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단 1초도 안 될 짧은 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꽃다운 아들의 모습을 영원(永遠) 속에 담고 싶은 애끓는 모정(母情)이 그려집니다. 아울러 “설령 여인들이 제 젖먹이를 잊는다 하더라도”(제1독서) 우리를 절대로 잊지 않으시는 주님을 생각합니다.
2. 하느님 신비의 관리인(1코린 4,1 참조)
2004년 5월 16일에 이탈리아 출신의 잔나 베레타 몰라(Gianna Beretta Molla, 1922~1962)가 시성(諡聖)됐습니다. 성녀는 네 자녀를 낳은 어머니며 의사였습니다. 그가 넷째를 임신했을 때 자궁근종이 발견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출산(出産)이 자신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는 일념(一念)으로 치료를 미뤘습니다. 마침내 성녀는 딸을 순산(順産)했고, 꼭 1주일 뒤에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오늘 제2독서는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1코린 4,2)라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마지막 숨이 넘어갈 때까지도 “예수님,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했던 잔나 베레타 성녀의 성실함을 따르고 싶습니다.
3. 하느님을 먼저 찾아라(마태 6,31-33 참조)
지난 2월 7일 일본 천주교회는 에도시대 때 무장(武將)이자 다이묘(大名)였던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 유스토, 1552~1615)이 복자품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는 봉건영주의 지위를 활용해 선교사들과 신자들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고, 덕분에 많은 사람이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카야마 복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주교 박해 앞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재산과 명예 등을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를 ‘순교자’로 인정하고 복자로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태 6,24)고 단언하시면서, 하느님 안에 ‘모든 것’(마태 6,32-33 참조)이 있다고 깨우쳐주십니다. 이 진리를 교회가 선포한 성인들과 복자들이 온 생명을 다하여 증거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은 ‘먼저’였고 ‘모든 것’이었고 ‘유일한 주인’이셨습니다.
4. 소유(所有)냐 존재(存在)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하느님 의식(意識)과 인간 의식의 실종은 소유 가치가 존재 가치의 자리를 차지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물질적 안락만 추구되고, 영적 종교적 차원과 같은 실존(實存)의 더 심오한 차원은 무시됩니다”(「생명의 복음」 23항 참조)라고 깨우쳐주셨습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곧 사순시기가 시작합니다. 부디 “사순시기는 우리가 주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에 따라,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을 찾는 믿음으로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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