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향기
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한다느 것이다!
“네가 엄마를 알어?”에 대해 아마 자기 엄마를 모른다고 대답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묻는다면?“ 너엄마키가어떻게되고몸무게가 어떻게 되는지 알어? 신발 크기를 알어?”아마도 잘은 모르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잘 모른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엄마에 대해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엄마와 나의 인격적인 체험이 밑바탕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그 체험의 지식이 안다고 대답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엄마의신상기록을 꿰고 있다고 해서 엄마를 잘 안다고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식적으로 하느님을 아는 것은 엄마의 키나 몸무게 혹은 신발 사이즈를 아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에 진정 하느님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나의 인격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느님을 아는 것이야말로 진짜 하느님을 아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책을 통해, 혹은 교리시간에 보고 배운 대로 답하기를 원하시는 질문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삶 안에서 내가 만난 그분이 누구인지를... 지금 내 마음 속에서 느끼는 그대로 대답해야 합니다.
신앙은 수학공식이 아닙니다. 알고 싶어지는 욕구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생기게 마련입니다. 서로를 잘 안다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고 서로를 믿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고, 그것이 곧 우리들이 말하는 믿음(신앙)이 아닐까요?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고백하고 우리들의 삶에서 체험한 그것을 지나치게 주관화시켜 다시 우리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려 할 때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꾸짖으신 것처럼 우리를 꾸짖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기 십자가 안에 담긴 참된 의미와 그 안에 담긴 신비를 간과하는 사람들, 하찮은 것에서도 자기를 버리지 못해 안달해 있는 사람들, 세상의 명예와 권력욕에 눈이 멀어 자기만족과 과업성취주의에 젖어 사는 이들이 바로 사람의 일에만 중독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나라의 신비에 초점이 놓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역사하시는 성령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대응하게
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 뜻이나 자기주장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묻게 됩니다.
신앙은 분명 지식을 전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체험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으로 묻고계십니다.
“○○야!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사회사목국 국장 김경진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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