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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 울지 않는 일본인

namsarang 2009. 11. 19. 22:36

[만물상]

소리 내 울지 않는 일본인

 

2004년 일본 니가타에 리히터 6.8의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 고베 대지진에 조금 못 미치는 강진(强震)으로, 사망자가 65명, 부상자가 4800여명에 달했다. 유타라는 두살배기와 어머니가 바위에 깔려있다는 소식에 일본 열도가 가슴 졸이며 모자(母子)의 생환을 기원했다. 그때 유타의 할머니가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명랑하게 집을 나갔던 유타가 엄마와 함께 건강하게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한국인이라면 대성통곡을 하고, 주변 가족이 실신한 그를 부축하는 모습이 화면을 장식했을 것 같다. 일본인들은 자기에게 닥친 불행을 드러내기 앞서 그 불행으로 인해 남들이 자기를 걱정하고 신경 써주는 데에 미안함을 내비친다. 이라크 테러조직에 납치됐던 일본인 고다씨가 많은 일본인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끝내 살해됐을 때 가족들이 내놓은 성명도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였다.

▶'남에게 폐(迷惑·메이와쿠)를 끼치지 않는다'는 철칙은 일본인이 어려서부터 배우는 사회생활 교육의 1장 1절이다. 남을 언짢게 하고, 남에게 걱정을 끼치고, 신경쓰게 만드는 게 모두 '폐'에 해당한다. 일본인들의 이런 태도는 장례 절차에도 배어있다. 한국에선 장례를 하면 주위에서 상주에게 곡(哭)을 하라고 시킨다. 그러는 것이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 고인을 잃은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례식장에선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다. 자기의 슬픔을 남이 걱정하고 위로해주게 하는 것 자체가 '폐'라고 생각하고,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고 여기는 태도가 바탕에 깔려 있다.

▶부산 사격장 화재로 목숨을 잃은 일본인 유족들이 슬픔을 절제하는 모습이 보도됐다. 즐겁게 해외여행 나섰다가 여행지 업소의 관리 소홀과 시설 미비로 불이 나 졸지에 죽음을 맞았으니 얼마나 기막히고 분통 터질 일인가. 그러나 일본인 유족들은 침통하게 무릎을 꿇은 채 생각에 빠지거나 가족끼리 둘러앉아 눈시울을 적실 뿐이었다고 한다.

▶한국 정부가 화재로 일본인들이 희생된 데 대해 신속하게 사과하고 나선 것은 잘한 일이다. 입장을 바꿔 일본에 여행간 한국인이 7명씩이나 어처구니없는 화재로 참사를 당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일본인 유족들은 슬픔을 분노로 연결시키지 않으면서도 자기네 영사관을 통해 장례와 관련된 요구와 권익을 착실히 관철시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