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의 향 기
신부님의 아들입니다.
벌써 20년이 넘은 일입니다. 가정방문을 갔는데 그 댁 자매가 갓난아이를 안고 있다가 나에게 아이를 건네면서 실은 이 아기는 신부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가시나무새’의 주인공도 아니고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지요.
그 자매가 말하길 어느 자리에서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고 그 아기가 바로 이 아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댁은 남의 문간방에 사는 아주 빈한한 가정이었고 이미 아이가 3명이나 있었습니다. 네 번째 아이, 그 녀석 이름은‘후’로 외자인데, 하느님이‘후’하고 성령의 입김을 불어넣어 아이가 생겨났다는 뜻으로 아이의 아버지가 지은 것이랍니다. 하느님의 입김에 비할바가 못 되지만 불초 사제의 입김도 가세한 걸 아버지는 아마 몰랐겠지요.
오늘 복음의 성모님을 찾아가는 사목, 가정방문의 원조라 하여도 틀리지 않을 듯 싶습니다. 성모님은 잉태한 몸으로 산 넘어 엘리사벳의 집을 방문합니다. 당시 성모님의 처지는 인간적으로 보면 곤혹스런 입장이었지 않았을까요. 미혼모로서 겪어야 될 고초를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늘그막에 아이를 가진 엘리사벳을 방문했는데 아마도 산전산후 조리를 도우러 간 것이겠지요.
성모님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은 감격한 나머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 소리로 외칩니다. 그녀의 외침은 세세대대로 이어질 가장 아름다운 기도가 되어 늘 우리의 입에 오르고 있지 않습니까! 성모송말입니다. 예사롭지 않은 두 여인의 만남은 신세타령으로 이어질 수 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두 여인은 서로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하고 기뻐합니다.
엘리사벳의 뱃속의 아기도 함께 기뻐 뛰놀았을 정도였습니다. 성모님이 복된 이유는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기 때문입니다(45절). 성탄의 신비는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 인간을 찾아온 신비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시는거지요(요한1,14참조). 인간이 하느님을 믿기 전에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믿으셨습니다.
성탄이 가까웠습니다. 성탄은 먼저 가정 안에서 경축해야 됩니다. 우리 가정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번 성탄엔 각 가정에서 촛불을 켜놓고 오순도순 모여앉아 말씀을 듣고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신비를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가족들의 마음이 담긴 선물과 카드도 교환하고 그 기쁨을 이웃을 찾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찾아간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의 방문과 만남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아름다운 기도가 나오지 않을까요. 또 하나의 성모송처럼. 말씀으로 얻은 내 아들‘후’는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의정부 주교좌 성당 주임 서춘배 아우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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