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주보

성가정의 중심에는 순명이 자리하고 있다.

namsarang 2009. 12. 27. 13:15

[말씀의 향기]

성가정의 중심에는 순명이 자리하고 있다.

 

의정부 주교좌 성당 주임 서춘배 아우구스티노 신부

 

   부모가 이혼한 손자를 양육하는 할머니의 슬픈 표정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결손가정이 왜 그리 많은지요. 대한민국은 드디어 미국을 제치고 이혼율 세게 1위를 탈환했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저출산도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성한가정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가정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가정은 하느님이 만든 첫 번째 제도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가장 잘 보여주는 곳도 가정입니다. 성탄 후 첫 번째 주일을 성가정축일로 지냅니다. 구세주이신 분도 가정에서 그 성장과정을 거쳐야 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만큼 가정이 중요합니다. 나자렛 성가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나자렛 성가정에는 사랑, 믿으, 화목 등 소중한 덕목이 갖추어져 있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순명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최고의 목표로 그분들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지요 이를 위해서는 가족상호간 도전과 어느 경우엔 반목도 불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선 12살 가출소년(?) 예수를 소개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소년을 발견하고 왜 이렇게 속을 속을 썩이느냐는 어머니의 야단 섞인 한탄에 대뜸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49절)" 소년 예수의 말대답입니다. 성모님과 예수님 사이에는 늘 어떤 긴장이 있어 보입니다.

 

   성모님이 등장할 때마다 예수는 하느님의 뜻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누가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냐?"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마태 12,48.50) "여인이여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요한 2, 4)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하다는 어떤 여인의 환호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아들이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 응수합니다.(루카 11, 27-28 참조) '가족들이 서로 가라서고 집안 식구가 원수'(마태 10, 36)라는 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가족들을 사랑하지 않아서일까요? 아닙니다. 혈육의 정이 너무 강력한 나머지 자칫 하느님의 뜻을 소홀히 대할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소년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마음 속에 간직하였습니다. (51-52절) 손년을 통해서 드러날 하느님의 뜻을 염두에 두는 태도입니다. 아치 수태고지를 받았을 때 순명으로 수용했을 때를 연상시킵니다. 소년 예수 역시 부모들에게 그 무엇인가를 상기하도록 도전을 가했지만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명하며 어린시절을 지냅니다.(51절) 하느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꼽고 그것을 향해 모든 가족들이 한 방향정열이 되어있다면 그 가정은 성가정일 겁니다.  성가정엔 서로를 향한 헌신적인 사랑이 있겠지만 아브라함처럼 그들을 제물로 바칠 수도 있어야 됩니다.(창세기 22장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