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잡지 '별건곤'(50호)에 실린 '소대가리 경성 �[골학생이 처음 본 서울'이란 글의 일부이다. 필자는 시골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상경한 태초(態超)라는 인물이다. '인물곱고 맵시좋은 백화점 여점원들'을 보고 "후일 학업을 다 마치고 장가들 때는 반드시 서울 색시를 얻으리라"고 다짐한 그는 엘리베이터를 처음 타본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 ▲ 수원성 축조에 사용된 목제 기중기.
'미국 뉴육(紐育·뉴욕)에서 고층 가옥의 건축이 유행한 이래로 가옥 층수가 20,30층을 넘어 40층 이상의 가옥을 건축하기에 이르렀는데, 현지 유명 건축가의 담화에 따르면 지금이라도 100층 가옥을 건축하는 것이 곤난치 아니하나 승강기(昇降機)의 힘에 한정이 있어 50층 이상의 고처에 도달키 불능하다더라.'
- ▲ 1910년 조선은행(지금의 화폐금융박물관) 건물.
승객용 엘리베이터는 철도호텔(지금의 웨스틴 조선호텔)에 맨 처음 도입됐다. 한반도 철도망을 완성한 1914년 일본은 조선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원구단에 호텔을 짓고 오티스 승강기를 설치했다. 석탄 철광석 등 자원 수탈에 앞장선 일본 철도국의 기지이자 직원 휴식을 위한 건물이었다.
그 후 서울과 지방에 승강기가 늘어 1940년대 한국 내 승강기는 약 150대에 달했다. 서울의 조선총독부, 경성역(서울역), 세브란스병원, 조선군사령부, 경성고등법원, 화신·삼월(三越)백화점, 부산 삼중정(三中井)(지금의 부산시청 별관), 대구의전부속병원(현 경북대 부속병원), 대구동산기독병원(현 계명대 의대), 평양화신백화점, 전주예수병원, 광주의전부속병원, 압록강수풍발전소 등이었다.
신문물 승강기는 일본인의 손에 의해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년 뒤 한국산 승강기는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