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100년전 우리는

[64] 승강기가 몇만길이나 떨어지는지…

namsarang 2010. 3. 18. 19:17

   [제국의 황혼 '100년전 우리는']

[64] 승강기가 몇만길이나 떨어지는지…

  • 지해범 전문기자

 

1909. 8. 29.~1910. 8. 29.

 

"남타는 승강기니 나도 한번 타볼까. 사람들을 비집고 드러가서 '표찍으시요' 소리가 날까바 미리부터 조끼 봉창에 손을 너코 구녁(구멍) 뚜러진 돈 한푼을 꼭 쥐었다. 땅속으로 몇만길이나 떠러지는지 현기증이 난다. 급행차가 시골정거장 지나드시 4층 3층 2층 그 다음에 가서 승강기가 딱 슨다. 엉겹결에 튀여나와 돈도 안 내였다. 나만 공짜인가보다. 아니다. 남들도 돈을 안낸다."

1932년 잡지 '별건곤'(50호)에 실린 '소대가리 경성 �[골학생이 처음 본 서울'이란 글의 일부이다. 필자는 시골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상경한 태초(態超)라는 인물이다. '인물곱고 맵시좋은 백화점 여점원들'을 보고 "후일 학업을 다 마치고 장가들 때는 반드시 서울 색시를 얻으리라"고 다짐한 그는 엘리베이터를 처음 타본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수원성 축조에 사용된 목제 기중기.
한국에 승강기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00년 전후로 추정된다. 승강기의 '원조' 격인 '거중기(수원성 축조에 사용된 목제 기중기)를 개발한 우리 민족이지만, 이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했다. 대한자강회월보 제4호(1906.10.25.)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싣고 있다.

'미국 뉴육(紐育·뉴욕)에서 고층 가옥의 건축이 유행한 이래로 가옥 층수가 20,30층을 넘어 40층 이상의 가옥을 건축하기에 이르렀는데, 현지 유명 건축가의 담화에 따르면 지금이라도 100층 가옥을 건축하는 것이 곤난치 아니하나 승강기(昇降機)의 힘에 한정이 있어 50층 이상의 고처에 도달키 불능하다더라.'

1910년 조선은행(지금의 화폐금융박물관) 건물.
'한국승강기산업발전사'에 따르면, 이 땅에 승강기가 처음 설치된 것은 1910년 조선은행(지금의 화폐금융박물관) 건물이었다.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한 이하영 유일승강기 회장은 "강제합방 수개월 전 완공된 조선은행에 처음 승강기가 설치됐다는 것이 일본측 자료를 통해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일본 오티스 주식회사의 '엘리베이터 50년의 발걸음(1983년)'은 '1910년 다쓰노 긴고(辰野金吾) 박사가 설계한 조선은행에 화폐운반용 수압식 엘리베이터와 요리용 수동식 리프트가 설치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승객용 엘리베이터는 철도호텔(지금의 웨스틴 조선호텔)에 맨 처음 도입됐다. 한반도 철도망을 완성한 1914년 일본은 조선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원구단에 호텔을 짓고 오티스 승강기를 설치했다. 석탄 철광석 등 자원 수탈에 앞장선 일본 철도국의 기지이자 직원 휴식을 위한 건물이었다.

그 후 서울과 지방에 승강기가 늘어 1940년대 한국 내 승강기는 약 150대에 달했다. 서울의 조선총독부, 경성역(서울역), 세브란스병원, 조선군사령부, 경성고등법원, 화신·삼월(三越)백화점, 부산 삼중정(三中井)(지금의 부산시청 별관), 대구의전부속병원(현 경북대 부속병원), 대구동산기독병원(현 계명대 의대), 평양화신백화점, 전주예수병원, 광주의전부속병원, 압록강수풍발전소 등이었다.

신문물 승강기는 일본인의 손에 의해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년 뒤 한국산 승강기는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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