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6.25전쟁60주년

남편 옆에 잠들다

namsarang 2010. 4. 17. 21:38

[나와 6·25]

남편 옆에 잠들다

14일 오후 영연방 4개국의 6·25 참전용사와 유가족 200여명이 부산 남구 대연동‘UN기념공원’을 방문, 참배행사를 가졌다. 이들은 호주군 전사자인 케네스 휴머스톤씨의 묘역에 그의 아내 낸시 휴머스톤씨의 유해가 합장 되는 순간도 함께했다.〈본지 14일자 A8면〉휴머스톤 부인은 58년간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살다 이날 남편 옆에 영원히 잠들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4개국 참전용사와 가족 200여 명이 14일 오후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영연방 전몰장병 추모행사를 가진 가운데 호주군 전사자 케네스 존 휴머스톤씨의 묘역에 그의 부인 낸시 휴머스톤씨의 유해가 안장됐다. 케네스 존 휴머스톤씨는 호주군 대위로 참전했다 1950년 10월3일 당시 34살의 나이로 전사했고, 200년 숨진 그의 부인은 60년 만에 남편 곁에 묻혔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만물상]

60년 만에 남편 곁에 누운 濠洲 아내

1947년 호주 간호사 낸시는 영연방군을 따라 패전국 일본에 왔다. 그녀는 호주 장교 케네스 존 휴머스턴과 사랑에 빠졌다. 열애 끝에 1950년 9월 결혼식을 올린 직후 남편은 6·25가 터진 한국으로 떠났다. 10월 3일 낸시에게 전보 한 통이 날아들었다. '제27영연방여단 호주연대 3대대 휴머스턴 대위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 결혼 3주 만이었다. 휴머스턴 부부 얘기는 제니퍼 존스와 윌리엄 홀든의 '모정'(慕情·1955년)을 닮았다.

▶낸시는 호주로 돌아갔다가 다시 일본 근무를 자원했다. 슬픔에만 빠져 있는 건 남편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1년 넘게 한국전에서 후송된 부상병들을 돌봤다. 귀국해서는 간호사로 일하며 이웃에 봉사해 1990년 호주 정부 감사패도 받았다. 그녀는 평생 홀로 살다 2008년 91세로 떠나며 조카에게 유언했다. "내 유해를 한국에 있는 남편 묘소에 뿌려다오. 이제 남편 곁에 있고 싶다."

▶그녀가 그제 부산 유엔공원 남편 곁에 잠들었다. 6·25에 참전했던 호주 노병(老兵)들이 유골을 들고 와 휴머스턴 대위 묘소에 합장(合葬)했다. 유엔군 2300여명이 묻힌 유엔공원에서 부부 합장은 네 번째다. 몇 년 전엔 어느 미군 부인이 찾아와 "남편과 함께 묻히고 싶다"며 결혼증명서를 남기고 갔다. 자식도 두지 않은 부인이 합장된 건 낸시 휴머스턴이 처음이라고 한다.

▶6·25 휴전 50년을 맞은 2003년 호주 그래프턴에서 전쟁영웅 찰스 그린 중령의 기념비가 제막됐다. 호주연대 3대대장으로, 휴머스턴 대위 직속 지휘관이었던 그는 1950년 10월 청천강까지 진격했다가 정주전투에서 숨졌다. 호주 공영방송 ABC는 그의 참전기록 '아직도 그대 이름은 찰리'를 중심으로 한국전 다큐를 만들어 방영했다. 부인 올윈 그린이 남편 전우들의 증언과 전쟁기념관 기록을 모아 쓴 책이다.

▶그녀는 외동딸을 키우며 혼자 살아온 이유를 "남편에 대한 가책과 성심(誠心)"이라고 했다. 그녀의 책 맨 끝에 아이다 프록터의 시 '그 사람(The one)'이 실려 있다. '…마음의 삶을 살고픈/ 마음 속에서/ 그 사람은 영원히 살고 있습니다.' 60년이 지나도 여전히 깊은 전쟁의 상처, 그 상처를 사랑으로 승화해낸 아내들을 보며 부부란 무엇인지 생각한다. 60년 전 이역만리까지 달려와 피 흘려 준 꽃다운 젊음들도 다시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