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타는 듯한 고통 이겨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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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옥씨가 아들 박용준씨 손을 잡고 힘든 시간을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는 박씨지만 그에게 화마는 여간해선 털어내기 힘든 악몽이다. |
박용준(아우구스티노, 31, 의정부교구 화정동본당)씨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화상 당했던 때의 상황, 떠올리고 싶지 않은 1년 6개월 간의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도 담담히 이야기하던 그였다.
하지만 곁에서 이야기를 거들던 어머니(이정옥, 56, 예비신자)가 상처를 보여주기 위해 아들이 신고 있던 양말을 벗기자 박씨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다. 피부이식으로 얼룩덜룩해진 발은 끊어진 신경을 잇는 수술로 퉁퉁 부어있었다. 가지런해야 할 발가락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박씨는 "지금은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31살 청년에게 화마(火魔)는 여간해선 털어내기 힘든 악몽이다.
일하던 공장 화재로 화상입어, 1년간 이식수술
박씨는 2008년 12월 온몸이 불덩이에 휩싸인 채 3층 건물에서 떨어졌다. 박씨가 일하던 인테리어 공장에서 불이 났고 불은 순식간에 박씨를 덮쳤다. 몸 절반 이상이 3도 화상을 입었다. 또 건물에서 떨어지면서 허리와 다리를 다쳐 수술을 해야했지만 화상이 워낙 심해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피부이식수술이 급선무였다. 화상 부위를 박씨 피부로 이식해야 했지만 화상을 입지 않은 피부가 모자라 일단 사체(死體) 피부로 응급조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박씨 피부를 배양해 이식수술을 해나갔다.
1년 간은 말 그대로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일반 진통제가 듣지 않아 모르핀을 맞아가며 지냈다. 이식수술이 끝난 뒤에는 허리와 다리 수술이 계속됐다. 병원을 수차례 옮겨가며 셀 수도 없이 수술대 위에 누웠다.
그동안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강제퇴원 당해 현재는 집과 병원을 오가며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산재보상은 받지 못했다. 박씨가 사업자로 등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부모님이 사업에 실패하자 대학을 그만두고 돈을 벌러 인테리어 납품 가게를 차렸다. 하지만 가게 사정도 여의치 않아 인테리어 공장에서 일용직으로 돈을 벌던 차에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그는 동종업계 사업자로 등록돼 있어 근로자가 받을 수 있는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어머니와 외가 친척네서 살고 있는 박씨는 "빨리 나아 부모님을 도와드려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서 고개를 떨궜다. 사업실패 후 신경쇠약증에 걸린 아버지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어머니 홀로 외판원 하지만 약값마저 버거운 상황
온몸을 붕대로 감고 지내는 그는 매일 10가지가 넘는 피부약을 바르며 지낸다. 어머니 이씨가 외판원 일을 하며 약값을 대고 있지만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감당하기가 벅차다. 게다가 밀려있는 병원비로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화정동본당 빈첸시오회 강영화(체칠리아) 부회장은 "아들은 지난해 병원에서 세례를 받았고 어머니는 지금 화정동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교육을 받으며 신앙의 힘으로 시련을 이겨나가고 있다"면서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려는 이들 가정에 평화신문 독자들이 희망이 돼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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