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초대교회 교부들이 성모 마리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살펴보는 작업이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초창기 교회 학자들의 성모 공경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번에는 암브로시오 주교와 그의 제자 아우구스티노 성인, 그리고 에페소공의회가 이해한 성모님을 살펴볼 차례다.
334년에 태어나 374년 이탈리아 밀라노교구장이 된 암브로시오 주교는 성모님의 믿음이 사제 즈카르야보다 뛰어남을 찬양했다. 그는 하느님 구원 계획이 성모님에게서 시작됐으며,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했다. 성모님이 여신이어서가 아니라 성모님께서 낳은 예수님이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암브로시오 주교는 또 성모님의 동정성을 강조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고,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는 데 가장 적합한 방법이 동정을 통한 잉태라고 봤다. 당시 동정으로 사는 수도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성모님이 동정이라는 사실은 동정 수도자들의 모범이 되고, 그들의 수도생활을 격려하는 데도 큰 의미가 있었다.
그에 따르면 성모님은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동정이다. 많은 이들이 육체적 동정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영적 동정이다.
암브로시오 주교는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과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흠숭은 오직 하느님만이 받으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와 동정녀들의 모범인 성모님을 공경해야 한다.
354년에 태어나 387년 34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저서 「고백록」에서 "늦게야 님을 사랑하게 됐습니다"고 고백했다. 이는 세례 받을 때 체험을 반영한 것이다. 보통 죽을 때가 돼서야 절실하게 다가오는 하느님을 34살에 사랑하게 된 것은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그런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모님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모님은 평생 동정이셨다고 말했다. 성모님이 동정인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잠긴 문을 통과해 제자들을 만난 것과 같은 기적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에게 성모님은 교회의 한 구성원이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신비체인 교회에서 성모님도 구성원인 동시에 다른 구성원들의 모범이 되는 분이다.
그는 성모님이 하느님의 어머니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여신을 숭배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서였다. 대신 그리스도의 모친이자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느님 구원 사업에 적극 협력한 분이 바로 성모님이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신을 회개로 이끈 어머니 모니카 성녀를 생각하면서 성모님을 더욱 친근하게 여겼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에게 성모님은 하느님 구원 섭리로 예정된 분이다. 하느님이 성모님을 택하셨다. 오늘날 사제가 지니는 권위도 하느님이 사제를 선택하셨다는 데서 나온다. 사제 개인이 똑똑하고 잘나서가 아니다. 하느님 섭리는 그런 것이다.
431년 열린 에페소공의회에서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에 대한 문제가 논의됐다. 네스토리우스는 "피조물인 거룩한 동정녀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아닌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치릴로는 이 주장을 반박했고, 갑론을박 끝에 공의회는 치릴로 주장을 받아들여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불러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논쟁은 451년 칼케톤공의회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라고 결론지으면서 일단락된다.
성모님이 하느님의 어머니냐 아니냐는 논의는 사실 예수님이 하느님이냐 아니냐는 논의의 연장에서 나온 것이다. 초세기 교부들은 이단과 맞서 싸우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를 확립해나갔다. 성모님에 대한 교리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립됐다.
정리=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