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교부들은 하느님의 어머니, 즉 성모의 신적 모성과 동정성에 대해 논의했고, 드디어 교회는 553년 콘스탄티노플공의회를 통해 공식 교의로 선포한다. 교부시대 후기에 들어서 교부들은 성모의 무죄한 잉태, 무죄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성모께 드리는 찬미가 '아카티스토스(Akathistos)'도 이 시기에 쓰였다.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에서 나온 「올바른 성모신심」 부록으로 아카티스토스를 수록했는데, 이 찬미가를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콘스탄티노플의 젤마노 주교, 세르지오 주교 등이 성모 찬미가를 지은 후보자로 꼽힌다. 특히 마리아에 대한 강론을 많이 남긴 젤마노 주교는 성모신심이 탁월했고, 그의 글은 마리아 공경 혹은 마리아에 관한 회칙에 많이 인용됐다.
8세기께 기록에 보면, 비잔틴 전례 사순 제5주 토요일을 '아카티스토스 토요일'이라고 불렀는데, '아카티스토스'라는 말은 '앉지 않는다'는 뜻이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서서 불렀다는 의미로 '아카티스토스'라고 불렀다.
이 시기 뚜르의 주교 그레고리오는 특별히 성모의 중재기도로 이뤄진 기적들에 대한 이야기를 서방 교부로는 최초로 알렸다. 그는 성모께서 돌아가시자 제자들이 모였고, 성모를 무덤에 안장하자 성모의 영혼과 육신이 분리돼 영혼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성모 승천에 대해 말한다.
리비아 주교였던 테오테크노 역시 성모승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부활하고 승천한 예수의 육신은 성모에게서 왔기에 성모 승천은 당연하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위해 하늘나라에 가서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고 했다면, 성모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는 것은 더 당연하다는 것이다.
또 구약성경에 에녹이나 엘리야 승천 이야기가 나오는데 성모는 에녹이나 엘리야보다 더 순수하고 오점 없는 영혼을 지니신 분이기에 더 그러하다는 입장이다.
처음으로 자신을 일러 '종들의 종(Servus Serviorum)'이라는 표현을 쓴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성모 마리아는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진 위대한 산"이라 표현하며(이사 2,2 참조) 성모의 발현과 성모 중재기도의 효과에 대해 언급한다.
스페인 시빌리아 주교 이시도로는 처음으로 성모를 성령과 관련시킨다. 성모를 "성령의 물이 흘러넘치는 새로운 땅"에 비유한 그는 "시메온의 칼은 성모님의 순결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크레타 주교였던 안드레아는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죄인들의 피난처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성화 파괴자들에게 많은 박해를 받은 안드레아 주교는 성모의 인격과 성덕, 중재 역할에 대한 좋은 강론을 많이 남겼고, "성모 마리아는 원죄로부터 자유롭게 된, 오점 없이 깨끗하신 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서 성모의 거룩함은 그분의 내적 풍요로움과 덕성, 하느님과 관계 안에서 이뤄지는 특별한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언급한다.
성모의 자비는 물론 하느님의 자비에는 비교할 바는 없지만, 성모께서 자비로우신 분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예수의 자비를 보면 어머니의 자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성모는 예수를 잉태하면서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시킨 중개자라는 것이다. 그분의 중개는 율법과 은총 사이에서도 이뤄지고, 구약과 신약 사이에서도 이뤄진다. 성모의 또 하나의 역할은 이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과 연결시키는 중재자로서 어머니의 역할로 나타난다.
또 교부시대 막바지를 살아간 다마스쿠스 요한 주교는 성모는 하느님께 선택되셨고, 구약성경에 예언돼 있던 분이며, 그분의 탄생은 하느님 은총으로 이뤄졌고, 그분은 영적으로 충만한 분이라고 강조한다. 성모 승천의 특권을 출산 시 동정성의 신비와 연결시키고, 성모는 인간을 위한 중재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하느님에 대한 흠숭과 성모에 대한 공경을 구별한다.
교부들의 마리아론에 대해 학자들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신적 모성이 그 핵심이라고 평가하면서 교부들의 마리아론은 늘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마리아론은 항상 그리스도론과 관련해 언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리=오세택 기자 / sebastiano@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