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
▲ 박재식 신부 (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
계절 탓인지 아니면 한 방송에서 들은 “태양을 쬐는 시간이 적어서” 생긴 증후군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굉장히 피곤합니다. 약속을 잊거나 물건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새삼 나이가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고 ‘나는 어디에 관점을 두고 살았는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무엇을 붙들고 살아왔는가?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봅니다.
2013년 실시된 의정부교구 신자들의 신앙의식과 생활에 관한 조사에 의하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묻는 질문에 ‘건강’(43.5%)과 ‘가족’(33.5%)이라고 응답한 분들이 ‘종교’라고 응답한 신자(15.6%)보다 월등하게 높게 나와서 충격을 줬습니다. 사제에게 이런 질문이 던져진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요? ‘부모ㆍ형제, 대한민국 민주화, 정의, 신자 분들의 올바른 신앙생활, 하느님 나라’ 등 여러 대답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과연 무엇이 가장 소중한 가치라 생각하고 있을까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을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통해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집중한 것은 바로 ‘어린 나귀’(마르 11,7)입니다. 요한 복음에는 ‘어린’이라는 단어가 없지만 공관 복음 전체는 ‘어린 나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까요? 오늘은 왜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께서 멋지고 커다란 말이나 마차를 타지 않고 ‘어린 나귀’를 타셨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복음서 전체를 보면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놀라고 흥분된 상태에서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특히 요한 복음에는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예수님과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라자로를 보려고 모여들었고 예수님을 믿었다”(요한 12,9-11)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들은 죽은 이를 일으키시고 병자를 치유하시며 빵과 포도주의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희망의 왕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런 엄청난 능력을 지닌 예수님이 ‘멋진 말’이나 ‘병거’(兵車)를 타고 오셔야 하는데 농민들이 이용하는 보잘것없고, 볼품없고 나약한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사고방식과는 다른 겸손과 사랑의 왕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즈카르야서(9,9-10)에서는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그분은 에프라임에서 병거를,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시고 전쟁에서 쓰는 활을 꺾으시어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시리라”는 예언을 확인시켜줍니다.
이는 로마나 이방 원수들의 병거, 군마, 활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유다 민족에게서 이러한 것들을 제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적이 아닌 유다에게서 말입니다. 어떻게 군대와 무기도 없이 독립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를 일상생활 안에서 생각해보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비롯해 지혜, 돈, 명예, 가족, 건강 등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내려놓고 진정한 겸손과 사랑을 통해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평생 말씀하시고 실천하신 ‘하느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 열광하다가 나중에는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라!”고 외치는 유다 민족 백성들과 나는 무엇이 다를까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고 한 자리를 차지하려 하다가 배반한 제자들과 나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 생각해봅니다.
성주간을 시작하면서, 세상의 유혹 속에서 살면서 유다의 왕들이 “반드시 평생토록 날마다 읽고 명심하라”고 한 내용을 함께 읽어봅시다. “임금은 군마를 늘리거나, 그것을 늘리려고 백성을 이집트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 또 임금은 아내를 늘려 마음이 빗나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고, 은이나 금을 너무 많이 늘려서도 안 된다(신명 17,16-17).”
우리는 매일 어떤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를 하는지요? 누구를 위하여 기도를 드리는지요? “호산나,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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