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그 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
지난 11월 14일(한국 시각)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의 악몽도 이제 서서히 망각 속으로 물러가고 있나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프랑스 공군이 즉시 보복으로 이슬람국가(IS)의 근거지인 라카를 공격했는데, 그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외신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때맞춰 아프리카 말리에서도 인질 테러가 발생했고, 파리 외곽 생드니에서 테러 주동자는 경찰에 의해 사살됐습니다.
9·11 테러, 빈 라덴 사살…. 이 폭력의 악순환이 끝나는 때가 올까요? 이것은 종교 문제일까요? 무슬림 전체가 전쟁과 테러에 가담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수의 과격한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왜? 빈부 격차 때문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소외되었기에 가난할 수밖에 없게 된 사람들로 말미암아 결국 온 세상이 이렇게 폭력을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테러리스트도, 프랑스군과 경찰도, 그리고 많은 나라에서 폭력을 정당화하면서 온 세계 사람들이 자신들 코앞에 닥친 폭력의 위협에 떨고 있습니다.
같은 날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일부 과격한 시위와 물대포로 한 농민이 의식을 잃고 중태에 빠지게 한 진압은 무엇입니까? 왜 많은 사람이 ‘과격한 시위’라는 말을 할 정도로 몸부림치는 의사 표현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자극적인 과격한 시위 장면만 보고 있습니다. 하여튼 시위대나 공권력이나 폭력적입니다. 왜? 빈부 격차 때문입니다.
한국은 세계적 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잘 되고, 재정도 건전하고, 대기업에는 현금이 남아돌 정도로 쌓여 있다는데, 서민은 죽을 지경에 이르고 대부분 젊은이는 희망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동안 모든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세계 최고의 산재 사망자의 희생 위에 이렇게 부유한 나라를 만들어놓고 어떻게 분배하면서 사느냐는 문제를 놓고 서로 대립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한 루카 복음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3,4-6).
바룩서 5장 7절도 같은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 영광 안에서 안전하게 나아가도록 높은 산과 오래된 언덕은 모두 낮아지고 골짜기는 메워져 평지가 되라고 명령하셨다.”
높은 산과 낮은 언덕, 곧 빈부 격차를 비유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빈부 격차가 심한 곳에서는 평화가 없습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이지요. 인간의 존엄성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 곳에서 구원을 노래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없지요. 사람의 존엄성을 확인할 수 없는 곳에서 하느님에 대한 찬양 노래가 울려 퍼질 수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인간이 비참하게 파괴되고 있는 곳에서 하느님에 대한 찬미를 기도하고 있다면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과연 인간은 스스로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참된 평화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존엄성이 확인되는 사회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인간을 찾아오십니다. 2000년 전에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그분은 오늘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가난한 사람들의 운명에 동참하시면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곳에서 평화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오늘도 하느님은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힘으로 부활하셔서 맨 먼저 제자들에게 평화를 선언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사람들의 탐욕 속에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부활시키면서 참 평화를 세상에 선물로 주십니다.
온 세상이 예수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다가오는 예수 성탄 대축일이 현실에 눈 감고 상업주의에 휘둘리는 세속적 연말 축제가 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됩니다. 참된 성탄절에 기쁜 성가가 파리에서, 라카에서, 서울에서, 말리에서 울려 퍼지도록 두 눈을 부릅떠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자비가 아기 예수님 얼굴에 가득 담겨있습니다. 이 자비가 세상에 참 평화를 갖다 줍니다. 어떤 이유로도, 누구 편에서도 폭력은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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