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새 아담의 탄생
▲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
예수님 성탄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기에 교회와 세상이 크나큰 축제로 지내는 것입니까? 단순히 가장 많은 사람이 신봉하는 그리스도교 창시자의 탄생이니까 기뻐하고 축하한다는 겁니까?
얼마나 대단한 탄생이기에 임신 중인 성모 마리아께서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태중에 있던 세례자 요한도 즐거워 뛰놀기까지 했겠습니까? 그러면 이분의 탄생을 좀더 자세하게 들여다볼까요?
하느님 아드님께서는 아버지 뜻에 순종하여 기꺼이 인간이 되어 오신 것입니다. 어떻게 비참함에 놓여 있는 인간을 구원하겠다는 것인가? 아담과 하와의 첫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느님을 떠나와 비참하게 됐습니다. 이 인간의 근본적인 구원은 새로운 인간이 나타나서 하느님 아버지께 완전한 순종을 함으로써 구원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노래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 10,7).
첫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께 불순종하고 하느님 곁을 떠나서 비참하게 살게 된 인간을 찾아서, 새로운 인간이 순종으로써 비참한 인간을 구출하기 위해서 하느님 아드님께서 아버지께 순종하면서 인간이 되셔서 탄생하시면서 우리 인간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새 하와이십니다. 새로운 인간이지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태중에 자리 잡고 하느님 아드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시는 신비로운 육화를 맞이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순종과 함께 새롭게 시작된 새 인간의 탄생은 이미 십자가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은 십자가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탄생 전에 이미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십자가를 향하는 운명이었습니다. 이렇게 성탄으로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길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너 보잘것없는 고을 베들레헴아, 결코 보잘것없지 않다.’
사촌 언니 엘리사벳과 석 달가량 함께 지내던 성모 마리아께서는 만삭의 몸으로 남편 요셉과 함께 베들레헴을 향하여 길을 떠납니다.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왜 하느님은 이렇게 어려운 일들을 선택하시면서 ‘하느님의 인간 탄생’을 진행해 나가는 것일까요?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미카 5,1).
보잘것없는 작은 고을 베들레헴, 그것도 마구간을 향하는 고된 여정을 하느님과 함께하는 믿음 강한 이 신비로운 부부가 한 걸음씩 걸음을 떼어놓습니다.
오늘 저도 주님의 성탄을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보잘것없는 곳을 하느님 뜻에 따라서 기꺼이 향하나요? 상업주의에 사로잡힌 현대의 안락한 세계에서 기꺼이 힘든 과정을 묵묵히 참아내면서 살아가고 있나요?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신뢰심을 간직하면서 작고 가난한 곳을 향해서 기꺼이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나요?
오늘 제주 강정에서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님이 광야가 아니라 강정의 외딴 바닷가에서 하신 외침이 제 마음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너 강정아! 너는 한국에서는 가장 보잘것없는 시골 마을이지만 너에게 온 나라에 평화가 시작되리라.”
그분도 참 현실적인 처신을 못 하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대책도 없이 도대체 어디로 향하십니까? 며칠 있으면 강정의 해군 기지 공사도 완성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굽히지 않고 평화를 외치십니까?
오늘도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의 후미진 곳곳에서 고단하게 살아갑니다.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칩니다. 그 죽어가는 사람들의 꺼져가는 생명의 불을 다시 살리려는 연대의 행렬이 마치 베들레헴을 향하는 요셉과 마리아 부부의 발걸음 같기도 합니다. 멀지 않은 우리 일상 가까이에서 이뤄지는 일이기도합니다.
우리도 간절히 외치면서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 한가운데서 참된 성탄을 맞이하고, 희망과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다.’
'생활속의 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0) | 2016.01.03 |
---|---|
이렇게 작고 가난한 분이 하느님이십니까? (0) | 2015.12.27 |
어디서 오는 기쁨인가요? (0) | 2015.12.13 |
“그 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0) | 2015.12.06 |
기다리기는 하는 겁니까? (0) | 2015.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