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왜 카나의 혼인 잔칫집에 술이 떨어졌을까
▲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
1. 혼인 잔칫집에 술이 떨어지다니
카나의 혼인 잔치에 대한 복음을 읽으면 늘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결혼 잔치에 왜 술이 떨어졌을까? 그때 함께 있던 제자들이 너무 많은 술을 마셔서 그랬을까? 모든 걸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무슨 한이 맺혔다고 잔칫집 술을 다 마셔버렸을까?
결혼 잔치에 초대받은 예수님께서는 다정하게 어머니를 모시고 기꺼이 집을 나서셨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흥겨워하십니다. 이웃 사람들과 담소도 나누고, 정성껏 준비된 음식도 맛있게 드십니다. 술도 한잔 하십니다. 그런데 그 결혼 잔치를 베풀던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만 술이 떨어진 것입니다.
어머니 마리아께서 슬며시 다가오셔서 아드님에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술이 떨어졌구나.” 낭패입니다. 술이 떨어졌으니 혼주는 체면이 말이 아니고, 흥겹던 분위기도 다 깨질 판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빨리 이 난처한 상황을 알아차리셨습니다. 우리가 곤경에 빠질 때에도 어머니께서는 이미 모든 상황을 파악하시고 행동에 나서시는 분입니다.
2. 엿듣게 된 두 분의 대화
그런데 두 분 사이의 대화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드님이 어머니 말씀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표정에서는 긴장된 분위기가 묻어납니다. “어머니,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좀 신경질적인가요?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이해하기 어렵군요. 예수님께서 어머니 청을 거절하실 것이면 좀 점잖게 핑계를 다시지요.
하기야 임신 때에도 어머니께서 얼마나 황당하셨습니까? 성부께서 성령을 통해 성자를 당신 태중에 모시도록 하였으니 말이지요. 앞으로 칼에 깊이 찔리는 아픔을 겪으면서 반대 받는 표징이 되리라는 노인의 말씀을 성전에서 덕담 대신 들으셨습니다. 헤로데를 피해 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이집트로 피신을 가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러 뛰어가시기도 하고, 끝내 십자가 아래에서 아드님의 죽음을 바라보는 아픔까지 겪으셨습니다. 어머니와 아드님 관계가 이렇군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당히 한 종교를 선택하고 마음의 평화를 위해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처럼 예수님 앞에 서서 그분 말씀을 들으면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신자들이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피하는지도 모릅니다.
3. 그 때는 언제입니까?
예수님 대답은 동문서답도 아니고, 상대방에게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십니다. “아직 저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 때는 언제입니까? 요한 복음서에서 최후의 만찬 직전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3-24). 그리고 체포되기 직전에 성부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주십시오”(요한 17,1). 처음부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의 영광을 추구하십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아직 자신의 때가 오지 않았다는 아들의 말을 이해하는 데 몇 년이 걸렸습니다. 아들의 십자가 죽음의 아픔을 겪고 부활하신 뒤에야 알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성부와 함께 중요한 계획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너그러우신 분이셨고 어머니의 간청을 기꺼이 들어주셨습니다. 물을 채운 물독은 어느새 맛좋은 포도주로 변했고, 그날 잔치 분위기는 급상승합니다.
4.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우리도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과 기쁨, 고통을 나눌 때 성모님 도움을 받습니다. 교회는 이처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직접 나서서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성모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고 있습니다.
아드님과 함께 계시는 성모님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항상 모시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주변에 따뜻하고 섬세한 관심을 두고, 새로운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주님께 말씀드리고 주님께서 개입하시기를 간절하게 청해야 하겠습니다.
성모님처럼 예수님 말씀과 생각을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다 보면 십자가 아픔을 묵묵히 견뎌내면서 부활의 기쁨 속에 그 말씀이 이뤄지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도 초대받은 그 영광의 때를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성모님 도움을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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