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
1. 예수님 말씀을 감미롭게 받아들이다가도 즉시 뱉어버리곤 합니다
오늘 복음서는 재미있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말씀이 지금 여기 예수님에게서 이뤄지고 있음을 알리자 모두 예수님을 좋게 말하며 은총의 말씀에 놀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즉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음에 마음이 편치 않음을 내비치고 계십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시돈 지방의 이방인 과부와 시리아 사람 나아만의 치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이방인을 선택하시면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계시다는 복음을 알리셨습니다. 그때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이 잔뜩 화가 난 가운데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갓난아기 예수님을 안고 외치던 시메온의 예언이 이미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한다.”
저도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얼마나 위로를 많이 받는지, 얼마나 많은 용기를 얻고 희망을 얻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이 때로는 저의 기분을 편하지 않게 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예수님 말씀대로 살기를 주저하고 제 안에 안주하려고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하늘로부터 받은 복음을 제 안에 가두려고 할 때 이미 복음은 사라지고 분노와 단죄와 슬픔만 남습니다.
2. 왜 하느님 말씀을 두려워하나?
왜 우리는 끝까지 복음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기를 두려워할까요? 말씀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때문이 아닐까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설프게 하느님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만 옳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들을 배제할 때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작게 시작된 이 현상은 심각하게 확대되기도 합니다. 교회에 겸손하게 입교한 신자가 한때 열심히 믿다가, 성장이 멈추고 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할 때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합니다.
성직자로 살아가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송이 신부일 때는 겸손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다가, 뭔가 좀 안다 싶으면 서서히 교만해지기 시작합니다. 선배 신부님을 비롯해 다른 신부들과 소통이 되지 않기 시작하고, 신자들에게 겸손하게 다가가기를 그만두게 됩니다. 신자들과 주민들에게 더는 기쁨을 갖다 주지 못하고 맙니다.
이렇게 마음을 닫아버리니 하느님 말씀이 내 안에서 질식하고 사라지고 맙니다. 하느님 말씀을 새롭게 들으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맙니다. 어느새 하느님 말씀을 들으려니 두려움이 앞섭니다.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고 실천하지 못하니 내 영혼이 영양실조에 걸리고 맙니다. 나도 쓰러지고, 공동체도 경직되고 분열되고 소란스럽게 되고 맙니다.
내 영혼을 향해 들려오는 하느님 말씀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하는데, 용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들으면서 하느님 명령대로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적당히 하느님과 타협하면서 살면 되겠다는 속삭임이 내 귀에 들려옵니다. 그럴수록 교회는 하느님 말씀과 멀어지고, 내용물 없는 포장만 남게 됩니다. 복음이 사라진 내 영혼, 복음이 사라진 교회를 많은 사람이 떠나고 맙니다. 더 이상 매력을 주지 못하는 곳에 사람들이 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느님 말씀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지 않게 해주십사고 성령의 이끄심을 매일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 말씀에 맛 들이며 살면, 사람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자신감 갖고 증언하고 증거하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해서 하느님께서는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믿는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을 닮아서 사랑하고 자비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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