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생활속의 복음] 오늘의 묵시록

namsarang 2016. 11. 13. 21:47


[생활속의 복음] 오늘의 묵시록


연중 제33주일(루카 21,5-19)


▲ 주수욱 신부 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1. 종교는 필요한가?
오래 전에는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고, 얼마 전까지도 사회를 지도하고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최근 한국 사회에 일어난 엄청난 불상사에도 종교가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성직자, 구국 십자군, 굿당 등으로 한국 사회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인간을 죽도록 사랑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허울뿐인 종교로 전락한 유다교와 끊임없이 마찰을 빚고 결국 그들의 농간에 희생되시고 말았습니다. 그 제자들도 유다교의 박해를 받으며 목숨을 잃어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나 봅니다.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 21,5-6).

2. 오늘 벌어지고 있는 묵시록 장관
시리아 알레포에서 어른들의 공습으로 죽어가는 아이들, 수많은 사상자. 끊임없는 테러와 강대국의 무력 개입. 북한 핵미사일 실험은 이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장사포를 비롯해서 대포로 끝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미군은 여러 신형 무기들로 평양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겁을 줍니다. 사드와 강정이 이어집니다.

불벼락뿐만 아니라 물벼락도 떨어집니다. 하늘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찰의 물대포 차에서 쏟아진 물벼락으로 백남기 농민이 죽고 말았습니다. 국가 권력에 의해서 국민이 죽은 것입니다. 국가의 권력이 쌀값을 현실화해 달라고 울부짖는 농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버젓이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은 거짓 구원과 해방을 약속하고 다닙니다.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서,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쟁과 반란은 모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쓰나미의 피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강력한 지진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경주에서 생긴 지진이 우리나라 국민을 두려움에 몰아넣었습니다. 병은 끊임없이 우리 생존을 뒤흔듭니다. 암과 같은 불치병이 우리 가정을 계속해서 위협하고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이 더는 가족들의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15억 명이 훨씬 넘게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종교의 자유를 제대로 누리는 사람들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신념대로 말하고 행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와 양심이 박해받는 사회입니다.

이렇게 당장 세상이 망할 것 같은 상황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 박해할 것이다”(루카 21,7-12).

3. 새 하늘과 새 땅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복음이 말하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새로운 인간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랑과 생명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그 하느님 나라를 믿고, 그 나라에 자신을 내맡기고 사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겨낸 부활을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 당장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러나 결코 뒤로 물러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비극적인 상황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줍니다. 하느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내로써 생명과 평화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