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생활속의 복음]대림 제1주일(마태 24,37-44)

namsarang 2016. 11. 27. 09:17
[생활속의 복음]대림 제1주일(마태 24,37-44)
‘너’는 데려가고 ‘나’는 버려지고?



▲ 정연정 신부(서울대교구 화곡본동 주임)



오늘부터 교회는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 해, 곧 새로운 ‘때(時)’를 시작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교형자매 여러분들께 한없이 자비로우신 주님의 은총이 늘 충만하시길 기도드립니다.

 

1. 칼로 보습을 만들 때(제1독서, 이사 2,1-5)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더 이상 칼을 쳐들 이유가 없으니, 전쟁 무기를 농기구인 보습으로 개조하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은 ‘민족들이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후, 공동으로 협약하여 전쟁 무기를 파기(破棄)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의 빛 속을 걷는” 그리스도인들은 전쟁과 파괴를 일삼는 삶을 내던지고 평화와 보존을 추구하는 길을 택하게 됩니다.

언젠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전쟁은 미친(어리석은) 짓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교황님께서는 기회가 닿는 대로 우리들에게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비인간적이고 비신앙적인 전쟁의 속성을 끊임없이 깨우쳐주십니다. 모름지기 주님 안에 사는 이는 지혜롭게 거듭나게 됩니다.

 

2. 빛의 갑옷을 입을 때(제2독서, 로마 13,11-14ㄱ)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영가」에서 “무엇인지 모르는 나는 말을 더듬는다오”라며 자신의 모습을 고백했습니다. 성인은 우리 인간이 하느님께 관한 특별한 지식(깨달음)에 대하여 말할 줄 모르기 때문에 ‘무엇인지 모르는 나’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은 ‘하느님 앞에 깨어 있는 영’이 될 수 있는 은총을 구해야 한다고 항상 가르쳤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형제 여러분, 지금 잠에서 깨어납시다! 그러면 빛의 갑옷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어둠을 감싸서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라고 권고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기로 회심했다고 합니다. 이렇듯이 자신으로부터 새롭게 깨어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어둠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3. 이제 마음을 바꿀 때(복음, 마태 24,37-44)

오늘 복음에 보면 ‘때’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즉 ‘노아 때’,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 ‘사람의 아들이 재림할 때’,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싶으신 ‘때’는 바로 우리들의 믿음 안에서만 올바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알아보는 것이야말로 ‘구원의 때’를 누리도록 이끌어 줍니다.

「레미제라블」의 작가로 잘 알려진 빅토르 위고는 하느님 현존을 느끼며 “왕이여! 아버지시여! 피난처여! 죄인의 희망이여! 영원한 일꾼이여! 영원한 추수꾼이여! 태초의 주인이며 종말의 심판자여! 빛으로서 세상을 만드신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라고 찬미하면서 “그분 없이 걷는 자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라며 늘 자신을 깨우쳤다고 합니다.

 

4. 나를 주님께로 재촉하는 ‘때’

저는 지난 8월 30일에 화곡본동 주임 신부로 부임했습니다. 약 11년 6개월 만에 이른바 ‘본당 공동체’ 안에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제로 산다는 것이 어디서나 같은 것입니다만, 제가 느끼는 ‘본당 신부’는 ‘예수님의 마음’을 실제로 더 살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어떤 소임 때와는 달리, 그다지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병든 이들,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갇힌 이들, 잃어버린 이들’을 좀 더 쉽사리 찾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임 신부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안도감(?)보다는 오히려 주님께서 저를 당신께 재촉하는 ‘때’에 올바로 응답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려고 합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지금도 주님께서는 “깨어 있어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끊임없이 당신께로 재촉하여 부르십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주님께서 선사(膳賜)하신 ‘때’ 안에서 구원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시길 빕니다. 아멘.

 

정연정 신부

△1993년 사제 수품(서울대교구) △2011년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 요한 바오로 2세 대학원 졸업(가정과 혼인신학 전공, 석사) △로마 한인신학원 재정담당, 절두산순교성지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