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자비의 문화’를 사는 기다림
오늘은 대림 제2주일이며 인권 주일입니다. 대림 시기는 우리들이 주님의 오심을 기쁨과 희망 안에서 기다리는 때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각자의 ‘삶의 자리(역사)’ 안에서 그분을 온전히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1. 주님을 앎이 가득하여(이사 11,9 참조)
오늘 제1독서에 보면 “함께, 더불어, 나란히(이사 11,6-8 참조)”와 같은 표현이 유난히도 우리 눈을 사로잡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선을 더 끄는 이유는 “함께, 더불어, 나란히” 지내는 주체들 사이의 자연적인 질서가 부정(否定)되는 듯한 까닭입니다. 과연 언제 ‘늑대와 새끼 양, 표범과 새끼 염소, 송아지와 새끼 사자, 젖먹이와 독사’가 ‘함께, 더불어, 나란히’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에 대하여 이사야 예언자는 “그날”(이사 11,10)이라고 밝혀주면서,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이사 11,9) 때라고 새겨줍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주님,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며 자신을 주님께 통째로 드렸습니다. 모름지기 이런 자세가 ‘주님을 아는 것’이고, 다른 이들과 ‘함께, 더불어, 나란히’ 살 수 있게 합니다.
2. 예수님과 같은 뜻으로(로마 15,5 참조)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유의지론」에서 “자유는 은총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아니, 은총이야말로 인간의 자유를 창조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은총을 통해서만 인간의 자유가 성숙하고 진리에 복속(服屬)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기꺼이 받아들이신 은총’으로 ‘한마음 한목소리로 진리이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됐다고 선포합니다(로마 15,5-7 참조). 결국 우리가 예수님의 뜻(마음)과 같게 된다면, 이는 진리이신 하느님의 은총을 입었다는 증거입니다.
3. 그분 곳간의 알곡으로(마태 3,12 참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촌에 가면 벼를 털고 도리깨질을 하고 검불 날리기 과정을 거쳐서 타작하던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검불 날리기는 낟알들을 한곳으로 모아놓고 가래로 퍼 공중 높이 던지면서, 키 또는 부뚜 따위로 바람을 일으켜 쭉정이와 검불과 알곡으로 분리하는 작업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 세례자가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라고 선포하면서 이 장면을 우리에게 다시금 떠올리게 해 줍니다.
지난 11월 20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비의 특별 희년’을 마무리하면서, 비록 “자비의 성문이 닫히더라도 ‘진정한 자비의 문인 그리스도의 마음’은 우리 안에 언제나 열려 있을 것”이라며 우리들이 ‘자비의 도구’가 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아울러 다른 형제들에게 무관심했던 우리의 눈길이 그들과 ‘함께 나누는’ 만남의 모습이 되라고 권고하셨습니다(「자비와 비참」 20항 참조). 이른바 ‘자비의 문화’는 주님 곳간의 알곡이 되는 회개의 삶입니다.
4.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마태 3,10 참조)
어느 날 한 자매님이 제게 다가오셔서 “요즘 신부님과 자주 악수해서 그런지 머리 아픈 것이 많이 나았습니다”라고 말씀하시기에, “자매님, 뻥치지 마세요!”라고 대꾸하며 그 순간을 애써 지나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매로 하여금 치유된 느낌을 갖게 하신 주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요한 세례자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마태 3,3)였습니다. 성경에서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그분의 계획과 동행하심’을 깨달은 기억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대림 시기를 지내는 우리들도 ‘광야’를 떠올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을 더 잘 알고, 그분의 뜻에 같이하여, 영적으로 알곡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들이 다른 형제들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응답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영적으로 충만한 대림 시기를 사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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